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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해전/한산대첩 코스4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세병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5-21

조회 4,480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jpg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閑山島 李忠武公 遺蹟)


한산도의 이충무공 유적지는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제승당 일원의 525,123㎡(159,128평)에 조성된 지상건물, 각종 비석, 동산문화재광장, 조경물 등과
풍치림야를 통칭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충무공은 좌수영 함대를 이끌고 그해(1592) 5월 4일 1차 출동하여 옥포, 합포, 적진포해전에서 대승하고 5월 29일의
2차 출동에서 적의 주력함대를 궤멸시킨다. 
이어 7월 4일 제3차 출동에서 세계해전사에 찬연히 빛나는 한산대승첩(7월 8일)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한산대첩으로 조선수군은 제해권을 완전 장악하여 왜군의 소위
[수륙병진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이어 8월 24일의 제4차 출동에서는 부산포에 집결해 있는 일본함대 100여 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에 선조는 1593년 8월에 이충무공에게 당시 편제에도 없던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고 경상, 전라, 충청 삼도의
수군을 통괄 지휘케 하는데 이 무렵 이충무공은
한산도에 진영을 옮기고 장기전에 대비한다. 한산도 두억개에 터를 고르고 진영을 설치하기를 정유년(1597) 2월 26일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기까지 3년 7개월 동안 하였는데 운주당을 비롯한 각종
공해, 창고와 부대시설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떻게 건립되었는지는 문헌상
명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세병관.jpg
세병관 (洗兵館)

세병관은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 고장 두룡포에 옮겨온 이듬해인
선조 38년(1605)
그해 7월 14일에 준공한 통제영의 객사이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웅장한 건물로 모든 칸에는
창호나 벽체를
만들지 않고 통칸으로 개방하였다. 우물마루로 된 평면바닥의 중앙 일부를 한단 올려놓았는데 여기에 전패를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으로 결구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식이지만, 익공식 수법과 다포식 수법이 많이
보인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 위에 직접 화반을 놓아 주심도리 장여를 받치고 있다.


가구는 십일량가로서 대들보를 양쪽 내고 주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주를 세워
중보를 걸고, 다시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걸었다. 종보 위에는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내고주와 전면 평주 사이에는 퇴보를 걸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팔작기와 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용마루, 합각마루,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였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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