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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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1593년5월20일(癸酉). 맑음. 새벽에 대금산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는데 역시 영등포의 척후병과 같았다. 늦게 순천부사가
오고 소비포 권관도 왔다. 오후에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왜선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본영군관
등에게 왜적의 물건을 실어올 일에 관한 편지를 써서 흥양 사람을
일러서 보내어 가져가도록 하였다.
- 노승석 옮김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 - 에서 발췌
난중일기나 장계를 보면 항상 판옥선보다도 탐망선을 더 많이
운용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왜적의 정보를 철저히
수집해서 미리 대비하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1593년에는
판옥선이 96척, 탐망선이 106척, 1594년에는 판옥선이 120척,
탐망선은 110척 그리고 명량해전때에는 판옥선이 13척, 탐망선을
32척으로 오히려 전투선인 판옥선 보다도 더 많은 탐망선을 운용
하였습니다.
전투가 있을때나 없을때나 정보를 제공한 백성들과 척후병들에게
그 대가로 쌀이나 소금, 무명 등을 주어 정보의 가치를 꼭 인정해
주었습니다. 사전에 정보를 취득하고 왜적의 기습을 차단하고
선승구전으로 승리하므로서 부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합니다.
또한 수집한 정보는 항상 검증도 하셨습니다. 확실한 정보를 확보
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서 다른 척후병들이 보고한 정보를 비교
분석하고 적의 동향을 파악해서 전쟁에 대비하셨습니다.
지금의 비지니스 세계도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사의
제품이나 고객의 요구를 미리 파악하고 대응하는것 그리고 차별화된
상품을 홍보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마켓팅 전략은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총성없는 경제전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탄금대전투에서 신립이 패한것도 정보를 제공한 군사의 목을 베어
왜적의 기습을 자초했고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패한것도 척후병을
세우지 않았던 것으로 볼 때 전쟁에 이길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정보 수집 능력이야말로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건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 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맥아더 장군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 진짜 정보인지
거짓인지도 가려내어야 하는 능력을 요구하며 어떻게 잘 활용해야 나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지도 명철하게 판단하는 실력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큰 일을 당하여도 이순신 장군처럼 의연한 자세로 힘있게 처리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르는 것은 평소에 접하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관찰하여
분석하고 판단하는 그리고 준비가 되었으면 과감하게 실천하는 그런
대처 방안이 우리 경제인들의 생존전략 인것 같습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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