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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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해전의 서막
1597년 6월 19일 戊寅. 새벽닭이 세 번 울 때 문을 나서서
원수의 진중에 이르려하니 날이 벌써 훤히 밝았다. 진에
이르니 원수와 황종사관(여일)이 함께 나와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 뵈었더니 원수는 원균(元均)에 관한 일을 내게
말하는데, "통제사(원균)의 일은 말로 할 수가 없소. 흉악한
그는 조정에 청하여 안골(安骨)과 가덕(加德)의 적을 모조리
무찌른 뒤에 수군이 나아가 토벌해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정말 어떤 마음이겠소? 질질 끌다가 나아가지 않으려는 뜻에
불과한 것이오. 그래서 내가 사천으로 가서 세 수사(水使)에게
독촉하여 진격하게 할 것이오. 통제사(원균)는 내가 지휘 할
것도 없소." 라고 했다. 내가 또 유지를 보니, "안골의 적은
경솔하게 들어가서 공격할 것이 못된다" 고 하였다. - 후략 -
- 노승석 옮김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 - 에서 발췌
조정과 관군 그리고 수군의 의견이 다릅니다. 출전 전략도
없지만 통합된 국가안보대책도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정예
조선수군 마저도 우왕좌왕 하다가 전멸을 당하고 맙니다.
칠천량해전의 서막은 단합되지 못한 분열이었습니다.
칠천량해전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의 일입니다. 권율과 원균이
서로 힘을 합하고 조정에서는 지원을 해 주며 팀워크를 가동
시켰다면 치욕의 칠천량해전은 없었겠다고 생각합니다.
맹자의 이루편에 "한 집안은 먼저 스스로 망가뜨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무너뜨릴 수 있다. 한 나라는 반드시 먼저 스스로
망할 이유를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무너뜨릴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혹독한 자기 반성 입니다.
기습 공격을 받기 좋은 칠천해협으로 들어가서 경계도 서지
않고 우리 스스로 무너지는 이유를 만들었지 않았는가 반문
해 봅니다.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니만큼 긴급작전회의로
아군의 협동단결점을 찾아보는 노력은 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선조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현장의
팀장이 되어 당당하게 팀원 들에게 요구한 모든 것을 자신도
기꺼이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여 팀장에 대한 팀원들의 신뢰가 쌓이지 못했습니다.
팀원들인 조정 대신들과 일선의 장수들은 각자 자기 생각대로
나라를 구한다고 일치되지 않은 목표를 향해 달려 갔기 때문에
칠천량해전은 예고된 패전이었으며 스스로 불러들인 참화였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서로 협동하겠다는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해서 팀워크를 유지하는 것인데 칠천량해전
처럼 서로 믿지않고 분열되어 문제 해결을 위한 융통성을 발휘
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우리 회사에도 적용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더는 원칙과 소신으로 팀원들을 믿고, 그 믿음에는 情이
있어야 하고, 일의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하고, 소통으로
오해를 불식 시켜야 한다는 칠천량해전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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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이순신 리더십 센터 건립 후원을 위한
이순신의 리더십 노트 출판기념회가 바로 오늘 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순신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일관된 삶의 자세에서 지혜로운 경영 해법을 찾아봅니다.
부디 참석 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일시 : 2017. 6. 19(월) 18시 ~
2. 장소 : 한국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 클럽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4번출구 10M 전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