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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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을 고금도(古今島)로 옮겼다.
조카 정랑(正郞) 이분(李芬)의 이충무공 행록(行錄)
무술년(戊戌 : 54세, 1598년) 2월 17일.
진을 고금도(古今島)로 옮겼다. 고금도는 강진에서
남쪽으로 30여 리쯤 되는 곳에 있어 산이 첩첩이
둘러쳐져 지세가 기이하고, 또 그 곁에 농장이 있어서
아주 편리 하였다. 공은 백성들을 모아서 농사를 짓게
하여 거기서 군량을 공급받았다. 이때 군대의 위세가
이미 강성해져서 남도 백성들로 공을 의지하여 사는
자들이 수 만 호(戶)에 이르렀고, 군대 위세의 장엄함도
한산진보다 열 배나 더하였다.
- 박기봉 편역 [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삼도수군 본영이 있었던 고금도를
다녀왔습니다. 1598년 11월19일 전사한 이순신의 유해
(遺骸)는 맨 처음 남해 충렬사 뒤편에 모셨다가 이 곳
고금도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83일간이나 봉안했는데 상서로운 기운마저
감도는 월송대에 올라가서 헌화하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바치신 육신은
없어졌지만 고귀한 정신만은 살아서 지금도 우리
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이순신은 1597년 9월16일 명량대첩 이후 서해대장정을
하며 10월29일부터 고하도에서 108일간 전열을 가다듬어
다음해인 1598년 2월17일 고금도로 진영을 옮겼습니다.
그 해 7월16일에는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도 합류하여
명실 상부한 조선 제일의 수군기지로 변모하였습니다.
한 시도 멈추지 않고 차기 전투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이곳 고금도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판옥선을 80척이나 건조하며 노량해전을
준비하는 유비무환의 리더십은 옥포해전에서부터
시종일관 지켜온 이순신의 경계 태세였습니다.
진린 도독과의 연회를 하고 있는 중에도 여러 장수들에게
적의 습격에 대비하도록 하여 적선 50여척을 불살라 버리고
고금도에서 승첩 장계를 올린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명나라
수군들까지도 고개를 숙이며 흠모해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에 있던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지켜내는 곧은
마음은 지금의 우리가 본받아야 할 리더의 덕목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써도, 백의 종군을 하고
아무것도 없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아랑곳하지않고
장수로서의 임무를 철저하게 해내는 굳은 신념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 입니다. 지금의 세태가 너무도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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