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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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나온 왕자들!!
[명나라 조정에서 보낸 관리 사용재(謝用榟)와
서일관(徐一貫)이 왕자를 모시고 멀리 적진에서부터
나왔으므로 임금이 관리를 시켜 위문하게 하였다.]
- 선조실록 1593. 8. 6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제독은 심유경을 왜적에게 보내 그들이 바다를 건너
(본국에) 가도록 타이르게 하고, 또 서일관(徐一貫),
사용재(謝用榟)에게 낭고야 들어가서 관백(평수길)을
만나보게 했더니, 6월에 비로서 적군은 두 왕자 임해군,
순화군과 재신 황정욱, 황혁 등을 돌려보내면서 심유경을
보내 돌아가 보고하도록 했다.
- 서애 유성룡 지음 이재호 옮김 [징비록] - 에서 발췌
선조는 의주로 파천을 가면서 임해군은 함경도로 순화군은
강원도로 근왕병을 모집하라는 미션을 주며 파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자들은 국난을 당하여 근왕병 모집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백성들의 물자를 강제로 수탈하거나
불법적 노동력 징발로 인한 폐해를 저질렀습니다.
함경도 회령 사람들은 가토 기요마사에게 두 왕자를
비롯하여 수행하는 대신들도 함께 끌고가서 넘겼는데
임해군과 순화군은 1년동안이나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명나라와 왜적의 "협상 제물"이 되어 갖은 고초를 다
겪습니다.
명나라의 심유경과 왜적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각자 자기
나라의 군주를 속이며 가짜 사신(송응창의 부하 사용재,
서일관)을 보내고 가짜 항복문서까지 위조해서(고니시의
가신 나이토 조안) 보내는 정상적인 국가 간의 협상이
아닌 소인배들의 협잡에 지나지 않은 국제적인 사기극을
연출하였던 것입니다.
조선을 배제한 명나라와 왜적들의 강화협상은 끝내 결렬
되어 정유재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댓가로 무고한 조선의
백성들만 또 한번의 피바람을 맞으며 스러져갔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일설에 의하면 임해군의 두
자녀(딸은 6살 아들은 4살)는 일본으로 끌려가서 포로로서
혹독한 삶을 살다가 버려졌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국방 외교 문제 등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자국의 이해관계를 내세워
북핵 문제 해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구한말
시대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이루어지는 협상은 다자간의 국가외교안보의
사항이든 기업의 비지니스에 해당하는 경제사항이든 상호
신뢰를 원칙으로 하는 참 실력과 강력한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참 실력은 현장을 잘 알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빨리 읽을 수
있는 경쟁국 보다는 한 수 위에 있어야 우리의 힘으로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공부하고
끊임없는 개혁과 도전에 온 힘을 기울여 준비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싸우고 싶은 곳에서, 싸우고 싶은 시간에,
싸우고 싶은 전법으로 싸우시고 이기셨습니다. 조선수군이
언제나 전쟁의 주도권을 쥐고서 진두지휘 하는 참 실력을
발휘 하셨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이순신 장군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후예이니까요.....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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