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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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만춘(諸萬春)을 공초한 사연을....
1593년 9월 4일(乙卯). 맑다. 시폐(時弊)를 진술한 장계와
총통 올려 보내는 공문과 제만춘(諸萬春)을 공초한 사연을
올려 보내는 공문 등 세가지를 올려 보냈는데 이경복(李景福)이
가져갔다. 유(柳成龍) 정승과 참판 윤자신(尹自新), 지사(知事)
윤우신(尹又新), 도승지 심희수(沈喜壽), 지사 이일(李鎰),
안습지(安習之), 윤기헌(尹耆獻)에게 편지를 쓰고 또 정표로
전복을 보냈다. 조카 봉(菶)과 윤간(尹侃)이 돌아갔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1592년 9월, 웅천의 적세를 탐지하고 영등포로 돌아오다가
포로가 된 제만춘은 원래 경상우수영 군교였는데 이듬해
8월에 일본을 탈출하여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진영에 도착
하였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쳐 돌아온 점을 불쌍히 여겨서 장계를
올리러 가는 인편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 왜적의 정황을 보고
하게 하였는데, 조정에서는 그를 풀어주고 다시 이 충무공의
진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조선은 전쟁이 일어난지 2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왜적의
내정과 무기의 우수함 여부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순신은
제만춘을 얻은 것을 몹시 기뻐한 나머지 마침내 자청하여
데리고 다니는 군관을 삼으니, 제만춘 역시 의기를 떨쳐
힘껏 도와 마침내 이 충무공이 공로를 이루게 하였다.
- [제만춘전] - 에서 발췌
[적군의 정확한 정세를 적군에서 얻거나 적군의 정세를
상세히 알고 있는 자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손자병법의 용간편을 잘 활용하였다는 생각과
함께 왜적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제만춘을 통하여 제대로
수집한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이렇듯 이순신 장군의 정보 수집 능력은 탐망선뿐만
아니라 정보원을 활용하여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확보해 놓는 용의주도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정표로 전복을 보내는 것도 이런
정보 수집이나 휴먼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강력한 전략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싸움마다 승리하는 이순신의 전략은
우연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중요한 단서 일 수도
있습니다.
매사에 디테일하게 관찰하고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여 기획된
일들은 최선을 다하여 실행하는 그래서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
으로부터 얻은 정보도 소홀히 하지 않는 성실한 자세에서
승리의 여신은 이순신의 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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