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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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포해전에서 배우는 작전기획의 중요성!
1594년 9월 27일 (壬寅). 아침에는 맑고 저녁에는
비가 왔다. 아침에 배를 타고 포구를 나가자 여러
배들도 일제히 출발하여 적도(赤島: 통영군 둔덕면)
앞바다에 대었다. 김 충용(金德齡), 한 별장(韓明璉),
주몽룡(朱夢龍) 등이 와서 모두 전략을 지시한 뒤에
각각 원하는 곳으로 갈라 보냈다. 저녁에 선 병사
(宣居怡)가 배에 오므로 본영의 배를 타게 했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장문포 해전은 9월27일에 출발하여 10월8일 한산도
본영으로 돌아오는 제7차 출전 입니다. 당시 도체찰사인
좌의정 윤두수에 의해 작전계획이 수립 되었으나 조정에서는
허락하지 않고 선전관을 보내어 중지 하도록 하였지만
이미 작전은 시작 되었습니다.
조선군 단독 최초의 수륙합동 작전으로 의병들을 상륙
시키고 이순신으로 하여금 수군으로 공격하게 하였으나
적들은 왜성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응전하지 않으므로
비록 패하지는 않았으나 승리 했다고도 볼 수 없는
어정쩡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작전을 최초로 계획하고 주도한 윤두수는 작전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헌부의 탄핵에 의해 파면 되었고, 이순신은
이번 출전 보고서를 원균이 쓰겠다고 하는 것을 허락하는
바람에, 전투의 실상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마치 큰
전공이 있었던 것처럼 조정을 속였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습니다.
권율은 정직 후 호조판서로 전보 되었다가 1년 후에
복직 되었습니다. 원균은 허위보고한 것이 탄로나
충청병사로 보내어졌습니다. 이렇듯 장문포 해전은
작전실패의 후유증으로 조정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도 전에 연합함대를 결성하여
일사불란하게 학익진 전법을 구사하여 대승을 거둔
이순신의 한산대첩 작전계획에 비하면 현장을 모르는
조정 대신들의 한 번 해 보자는 무모한 정서와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비교되어집니다.
비변사에서도 조목조목 실패의 원인을 열거하며 비판
하였는데 이는 평상시에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어
전장터에 나가 기필코 이기고 돌아오는 이순신의 작전
계획과는 거리가 먼 해전이었음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비지니스의 성패의
80%가 기획에서 정리 되어지고 결정 되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실패를 기획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장문포 해전에서 배우는 기획의 중요성 그리고 신중한
작전계획은 나라의 운명과 백성들의 생명과 안위를
그냥 감정적인 판단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의 성공은 기획단계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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