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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을 재목을 찍어 오라고 하였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10-30

조회 20,799



집 지을 재목을 찍어 오라고 하였다.

1597년 10월 30일(丁亥).  맑다.  아침에 집 지을 곳으로
내려가 앉으니 여러 장수들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해남 
현감(柳珩)도 와서 왜적에게 붙었던 자들의 소행을 전했다.
황득중(黃得中)에게, 목수들을 데리고 섬의 북쪽 봉우리
밑으로 가서 집 지을 재목을 찍어 오라고 하였다. 늦게
해남에서 적에게 붙었던 정은부(鄭銀夫)와 김신웅(金信雄),
그리고 왜놈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을 죽이도록 지시한
두 사람과 선비 집 처녀를 강간한 김애남(金愛男) 등을
모두 목 베어 효시 하였다.  저녁에 양밀(梁謐)이 도양장
(道陽場)의 벌레 먹은 곡식을 제멋대로 나누어준 일로
곤장 60대를 쳤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명량대첩으로 우리의 바다를 지켰으나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하고 열세인 조선수군은 고군산도까지 올라가서야
숨고르기를 합니다.  조선수군의 건재를 알리면서 왜적들의
북상을 막는 역활도 하면서 말입니다. 

바다로 나온 해상피난민들에게 해로통행첩을 발행하여
군량미를 모으고 의복을 준비하여 겨울을 나야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이순신은 조선수군의 기강 확립과 재건을 
급선무로 군량과 군수물자 확보에 온 힘을 기울 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꿰뚫고 있는 것입니다.
이순신이 재기용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전, 현직 부하장령
들과 의승군들, 그리고 연해안 지방민들의 자원 입대를
통해서 수군의 전력이 증강되었습니다.

장군이 이제 돌아오셨으니 우리는 살았다 하고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며 막하로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
이라도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이순신의 자랑스러운 부하로
고하도에서 겨울을 나며 조선수군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쳤습니다.
 
이렇게 조직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이순신이라는 리더에
대한 신뢰와 장군과 함께 이룩한 성과에 대한 자긍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과 함께 하면 된다."라는 브랜드가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신뢰의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며
평소에 자신을 갈고 닦는 수신(修身)의 처세와 더불어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애정어린 부하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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