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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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수군 재건의 외로운 길.....
1597년 8월 7일(乙丑). 맑다. 일찍 떠나 곧바로
순천으로 갔다. 길에서 선전관 원집(元集)을 만나
밀지(密旨)를 받았다. 병사(兵使) 관하의 군사들이
모두 패하여 돌아가는데 그 행렬이 길 위에 연달아
있었으므로 말 3필과 활과 화살 약간을 빼앗아 왔다.
곡성의 강정(江亭 : 석곡면 유향리)에서 잤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백의종군길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임명장을
받고 연해안을 돌면서 대책을 세워 보겠다고 하며
몇몇 부하장령들과 함께 나선 조선수군 재건의
외로운 길입니다.
칠천량해전의 패전소식을 듣고 백성들도 마을을
비우고 모두 피난을 갔습니다. 관군들도 스스로
무너져내려 패잔병처럼 되어 길 위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군사들을 모으고 왜적의
침략에 대비해야 할지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지만
어떻게 하든 조선수군을 재건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필사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며 대책을 세우며 길에서
군사와 군비 그리고 군량미도 모으며 걸어갑니다.
전날에 들어온 첩보로는 이순신과 왜군들과는 불과
2-3일 간격을 두고 같은 방향으로 서진하고 있어
아슬아슬 하기까지 합니다. 왜적들은 분탕질을 하며
뒤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순신의 복직에 의병과 승병들이 찾아오고 옛 부하들도
자진해서 이순신을 뒤따르며 이순신의 아들들과 조카
들도 함께 합니다. 백성들은 다시 돌아온 이순신에게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냅니다.
이순신도 선조 임금과 조정대신들도 숭유억불의 조선
에서 똑같이 유교를 공부했건만 무엇이 이들의 행동을
국난을 당한 이 시점에서 갈라 놓았을까요? 유교 경전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아나로그 시대나 디지털 시대나 사람의 도리는 하나이며
원칙과 기본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 개인의 수신(修身)이 더 빛을 발하지 않나
싶습니다.
거창하게 나라사랑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고자 하는 작은 실천이 결국 나라사랑으로 귀결되어
나의 자아실현으로 풍성하게 보답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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