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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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조방장(裵興立)이 찾아왔다.....
1597년 11월 11일 (戊戌). 맑다. 식사 후에 새로
집 짓는 데로 올라갔더니 평산 새 만호가 찾아와서
부임장을 바쳤다. 그는 하동 현감(申菶)의 형 신훤
(申萱)이다. 장흥 부사(田鳳)와 배 조방장(裵興立)이
찾아왔다. 저녁에 우 우후 이정충(李廷忠)이 왔다가
밤 8시에 돌아갔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난중일기에 임진왜란에 참전한 조선수군들의 이름이
약 400여명 정도 나옵니다. 위로는 수군절도사인 정3품
수사에서부터 우후(정4품) 만호(종4품) 등 이름없는 격군
들까지 거주지, 출신지 등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최측근 핵심 참모, 흥양 현감 백기
배흥립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1546년에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난 성주 사람으로 1572년 무과에 급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옥포해전
에서부터 사천, 한산, 부산포 해전까지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운 조선 중기의 무신 입니다.
당시 지휘관이었던 이순신은 장계에서 이순신(李純信),
권준(權浚), 정운(鄭運) 등과 더불어 해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장수로 기록하며 논공행상 할 것을 조정에
품의하였습니다.
특히 칠천량해전에서는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가 전사하고 원균마저 도망가자 우리 전선을 도맡아
적의 진격을 지연시키며 조방장으로서 역활을 다하였습니다.
배흥립의 효행도 당시 회자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이미 자신
에게 재산을 전부 물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일곱살 차이
나는 늦둥이 어린 동생에게 재산을 다 넘겨주고, 나는 녹봉
으로도 충분하다며 효성과 우애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배흥립은 흥양현감으로 있을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명에
따라 전함을 많이 건조해 전란에 대비한 인물로 1604년에는
왜란 중에 세운 공로로 무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공조참판이
되었고 1608년 사후에는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시호는 효숙(孝肅)을 받았습니다.
배흥립을 비롯한 이순신 장군의 부하장령들은 이순신의
신뢰재(信賴財)가 낳은 파워풀한 인재들임을 다시 한 번
입증 하는 동시에 싸움마다 이기는 팀워크로 세계 최강의
조선수군으로 지금의 대한민국 해군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효숙공 배흥립이 칠천량해전, 명량대첩, 그리고 노량해전
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누란을 극복한 시간들은 우리
에게 평화스러울 때일수록 국방에 대한 정신줄을 놓지말
것을 주문하고 있는 귀한 메세지라고 생각 합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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