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9-11-11
18,579
구조하기는커녕 도리어 배 안의 물건을 빼앗아갔다.
1597년 11월 14일 (辛丑). 맑다. 해남 현감 유형
(柳珩)이 와서 윤단중(尹端中)이 무리하게 한 일을
많이 전했다. 또 말하기를 "아속들이 법성포로 피난
갔다가 돌아올 때 바람을 만나 배가 전복 되는데,
바다 가운데서 만났어도 구조하기는커녕 도리어
배 안의 물건을 빼앗아갔다." 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중군선(中軍船)에 가두었다. 또 김인수
(金仁守)는 경상도 수영의 배에 가두었다. 내일은
아버님의 제삿날이어서 드나들지 않았다.
- 노승석 옮김 [교감 완역 난중일기] - 에서 발췌
윤단중은 호남절의록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전들을
구조하기는커녕 배에 있는 물건들을 약탈했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왜 그랬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왜적만 적은 아닌
것 이지요. 아군끼리 서로 돕지 않거나 배신 행위를
하면 적을 이롭게 하면서 적만도 못한 신세가 되는
것 입니다.
의병장 정도이면 군사기밀도 어느정도는 알 수 있고
군사작전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으며 정보를 공유하고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반 장졸들도 하지 않는 그런 짓을 의병장이 왜 했을까요?
명량대첩 후에 조선수군의 재건을 위해서 고하도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이 때에 이런 소식을 접한 장군은
일벌백계로 의병장을 배에 가두어 버립니다. 군율로
엄히 다스리시는 것이지요.
신상필벌을 철저하게 하신 이순신 장군의 원칙을 중시
하는 군사 경영이 눈에 띄는 대목 입니다. 옥포해전을
앞두고 탈영한 황옥천의 목을 베어 죄를 물은 결연한
의지의 일벌백계가 생각납니다.
지금의 우리사회를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공공질서는
물론이고 곳곳에 법령이 서지 않아 혼란스럽기까지 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경제뿐만이 아닙니다. 정치,
문화, 교육 등 전반적으로 그렇습니다. 불확실한 시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를 불안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국민들도, 회사도, 정부도, 관계기관
들도 모두 원칙과 기본을 다시한 번 점검해 보고 잘못
된 것들을 일벌백계로 용기있게 신상필벌을 하는 것이
법가사상을 주장한 한비자의 사자성어를 외우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