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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님의 생신날이지만......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05-06

조회 17,435



오늘은 어머님의 생신날이지만.....

1593년 5월 4일 (丁巳). 
맑다. 오늘은 어머님의
생신날이지만 가서 축수(祝壽)의 술잔을 드릴 수
없으니 평생의 한(恨)이 될 것이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세 발췌

전쟁 중에 어머님 생신을 찾아 볼 수도 없었겠지만
이 말이 그대로 되어 어머님 임종도 못보고 장례
도 치를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평생의 한(恨)이
되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해마다 돌아오는 어머님 생신에 술잔을 올리지도
못하셨던 이순신 장군의 애틋한 마음을 읽으며
가정의 달 5월에 어머님을 생각해 봅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님은 무장 출신인 변수림의
무남독녀로 남편 덕수이씨 이정과의 사이에 
아들 넷, 딸 하나를 두셨으며 83세까지 사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이신 초계변씨이십니다.

이율곡 선생의 신사임당이나 맹자의 어머니, 
한석봉의 어머니의 일화는 잘 알고 있지만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는 난중일기에 나와있는
것 이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백성들의 안위를 제일
먼저 염두에 두고 하신 모든 일들은 어머니
초계변씨의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 된 충효
정신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원래 사대부 집안이었기에 위로 두 아들들은 
문과의 급제를 위해서 힘썼지만 이순신에게는
문무를 겸비하도록 지지하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무장 출신인 보성군수 방진의 무남독녀 상주방씨를
며느리로 맞아들인 것도 우연은 아닌것 같습니다. 

1576년 늦은 나이로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자
자녀와 손자들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별급문기를
작성하여 재산 상속에 대한 투명한
관리를 한 것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군사경영을
세심하고 철저하게 한 것도 어머님에게서 받은
영향이 큰 것으로 사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고 한양으로 잡혀 올라
갔을때도 아들을 구하겠다는 의지로 83세 고령에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모한 할머니를 말리는
손자에게 "내 관부터 짜서 배에 실어라." 하며 뱃길에
오른 걸출한 여장부이십니다.

아산 해암리까지 가셔서 백의종군을 하는 아들을
보지도 못하고 그 아들이 준 복주머니를 놓지않고
손에 꼭 쥔 채 돌아가신 어머님의 삶과 태도는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여성 특유의 긍정의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머님은 숱한 곤경 속에서도 묵묵히 아들을 지지
하고 정도를 걸으면서 정성을 다해 사랑으로 일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온 몸으로 가르쳐주신 위대한
어머니이심을 알려줍니다.  어머니날을 맞이하여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던 성웅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초계변씨의 능동적인 모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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