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령옥사계(金德齡獄事啓)!
1596년8월, 선조수정실록에서 발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 옥에 갇혀 고문을 받고 죽었다. 김덕령이(충청도 홍산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한) 출동 명령을 받은 즉시 부대를 이끌고 길을 떠났지만, 역적이 평정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진으로 돌아왔다. -(중략)- 형장을 수백 대나 맞느라고 다리뼈가 다 부러졌지만 태연하게 해명하면서 말과 기색을 굽히지 않았다. 단지 말하기를, "신은 만 번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계사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3년 거상을 치르지 않고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원수를 갚으려고 부모의 정을 끊은 채 군복으로 갈아입고 무기를 들고 떨쳐 일어났습니다. 여러 해나 군사를 따라 다니면서도 조그마한 공로도 세우지 못하였으니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도리어 효성만 저버린 것이 되었습니다. 죄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만 번 죽어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신은 지금 죽음에 임하여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신이 모집한 용맹한 군사 최담령 등이 죄 없이 갇혀 있으니 죽이지 말고 써주기 바랍니다." 라고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죽었다. -(후략)-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했으나 누명을 쓰고 옥사했던 김덕령 장군이 이몽학의 반란에 가담했다는 모함을 받고 고문 당하고 죽는 과정을 선조수정실록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온 나라가 왜적의 말발굽아래 처참하게 유린되고 있는 전시상황에서 한 사람의 장수도 귀하게 써야하는 최고총사령관인 선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인사정책이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김덕령 장군은 죽으면서까지도 자기 부하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이렇게 죽이려고 하셨겠지요. 다행히도 약포 정탁 대감의 신구차(임금앞에 나아가 목숨을 걸고 충언이 담긴 변론요지서)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우의정이었던 정탁 대감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위한 신구차뿐만 아니라 김덕령 장군을 구명 하기 위하여 선조에게 상소 했던 [김덕령옥사계]가 최근에 발견되어 공개 되었습니다.
동인으로 영남의 거유(巨儒)인 72세의 노재상 약포 정탁 대감이 서인의 29세 호남출신 청년 장군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닥치게 될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무고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린 것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맡은바 일에 있어서는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판단력으로 바르게 실천하는 그런 용기있는 자세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조선의 선비 정신은 생명을 사랑하고 정의에 불타는 Gentlemanship으로 어떤 역경의 비지니스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전하는 것 같습니다.
세대간의 갈등, 정치적인 이해관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비용 등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난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리더십은 바로 이런 훌륭한 조상을 둔 우리의 자존감을 일깨우는데서부터 시작되는것이 아닐까요?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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