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 통곡 하였다.
1597년10월14일(辛未). 맑다. 새벽 2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서 냇물 속에 떨어지기는 했으나 쓰러지지는 않았으며, 끝에 가서는 아들 면이 나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 깼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횡득중(黃得中) 등이 와서 보고 하기를, 내수사(內需司)의 종 강막지(姜莫只)라는 자가 소를 많이 치므로 12마리를 끌고 간 것이라고 하였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으로부터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해주었는데, 열어 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떨리고 심기가 혼란해졌다. 겉봉을 뜯어내고 그 속의 편지봉투를 보니 겉에 열의 글씨가 보였는데, "통곡(痛哭)"이란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면이 전사하였음을 알고 나도 몰래 간담이 떨어져 소리를 내어 통곡, 통곡하였다. (하략)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명량해전에서 패한 왜적들은 이순신 장군의 생가가 있는 아산으로 쳐들어가서 당시 고향을 지키고 있던 이순신의 세째 아들 면을 살해했던 것입니다. 가장 비겁한 방법으로 전쟁을 하는 침략자 왜적들의 행태 입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필사즉생의 힘있는 리더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자식의 죽음 앞에서 초연해 질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이순신 장군은 어떤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는 강인한 마음의 소유자인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홀로 앉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웅크리고 있었다... 등 눈물로 지새운 기록이 35회나 나옵니다. 언제나 고독했고 언제나 혼자였지요. 어쩌면 이러한 고독이 앞으로 닥쳐올 두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픈 마음을 시를 쓰고 피리 소리를 들으며 아픈 마음을 긍정의 힘으로 승화 시키는 이순신만의 간절히 그리고 두려움없이 적을 맞아 싸우는 자기를 스스로 치유하는 소통의 리더십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독한 상황 속에서도 창의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제도를 혁신하고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필사즉생은 그냥 나온 말씀이 아닌것 같습니다.
리더들에게는 고독한 이유 그리고 통곡해야 하는 이유가 많습니다. 어떻게 소화 시키느냐가 문제이지요. 안으로 끌어안고 위축 되느냐 아니면 밖으로 던져 버리고 다시 일어나느냐는 각자의 몫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통곡해야 할 모든 문제는 창조경영의 에너지로 바꾸어 문제해결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고 힘차게 전진하는 엔진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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