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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칠천량해전/한산대첩 코스5 (충렬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5-21

조회 19,201



충렬사.jpg

통영 충렬사(統營 忠烈祠)


선조 39년(1606) 제 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으로 이충무공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경내에는 이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비롯하여 내삼문, 중문, 외삼문, 정문,
홍살문등 다섯 개의 문이
있으며, 중문 안에는 향사(享祀) 때 제수를 준비하던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외삼문 안에는 사무를 관장하던 숭무당(崇武堂)과 인재를 양성하던 경충재(景忠齋)가, 외삼문 좌우에는 충렬묘비(忠烈廟碑) 를 비롯한 6동의 비각이, 외삼문 밖에는 1988년에 복원한
강한루(江漢樓)와 전시관 등이 있다.  


지금 정침과 외삼문에 걸려 있는 「忠烈祠」현판은 현종 임금의 사액현판(賜額懸板)으로 문정공(文正公) 송준길(宋浚吉)의 글씨라 전한다.
1598년 11월 19일에 이순신 삼도 수군 통제사가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1633년에
향인 김여빈과 고승후가 이를 슬퍼하여, 초옥사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 추모함에 따라 현령 이성건이 충민공비를 세웠다. 1643년에 충무공 시호가
책봉되었고,
1658년에 조정에서 사당을 신축함과 동시 충민공비를 매몰하고
이 충무공비를 건립하였다. 
 


1973년에 남해 충렬사가 사적지 제 233호로 지정되어 재정비 사업 중 매몰된
충민공비가 발견된 것을 다시 세운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진왜란 중 노량해전에 참전 1598년 11월 19일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였으며 공의 유구는 최초로 관음포에 올려졌고 이곳
남해 충렬사에 안치되었다가
고금도(古今島)를 거쳐 충청남도 아산 현충사로
운구 되기 전의 가묘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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