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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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 7년 전쟁 해전도

출처 : 이순신 파워인맥(7년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ㅣ 글 : 제장명 ㅣ 그림 : 조창배

그림1 ㅣ옥포, 합포, 적진포해전 상황도ㅣ

그림1 ㅣ옥포, 합포, 적진포해전 상황도ㅣ

7년전쟁 첫 해전으로 이순신의 전라좌수군과 원균의 경상우수군이 연합하여 벌인 전투로서 1592년 5월 7일에는 거제도의 옥포와 합포에서, 5월 8일에는 적진포에서 적선 총 44척을 물리친 전투이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은 적선과 대동한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어선 46척까지 동원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림2 ㅣ사천, 당포, 당황포, 율포해전 상황도ㅣ

그림2 ㅣ사천, 당포, 당황포, 율포해전 상황도ㅣ

거북선이 처음으로 출전한 해전으로 유명하다. 1592년 5월 29일의 사천해전에서 처음으로 활약한 거북선은 당포(6월 2일), 당항포(6월 5일)전투에서 대단한 활을 보였다. 이 해전들에서는 적선이 포구 깊숙이 결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돌격선인 거북선의 활용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림3 ㅣ한산대첩 상황도ㅣ

그림3 ㅣ한산대첩 상황도ㅣ

이순신과 7차례 해전에서 연패한 일본군은 정예수군세력을 형성하여 견내량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를 미륵도의 목동이 해전 하루 전에 조선 수군에 연락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7월8일의 한산도해전과 7월 10일에는 또 다른 일본 수군장 구키와 카토오가 이끈 적선 42척을 맞아 29여척을 분멸 시켰다. 이 해전의 영향으로 일본군의 수륙병진전략이 무산되었다.

그림4 ㅣ부산포해전 상황도ㅣ

그림4 ㅣ부산포해전 상황도ㅣ

한산대첩의 승리 여세를 몰아 적의 근거지를 공격한 전투이다. 전라좌우수군의 전선 74척과 경사우수군의 전선으로 대규모 세력을 형성한 조선 수군은 1592년 8월 29일에 장림포에서 적선 6척을 분멸시킨 후 9월 1일에는 화준구(5척), 다대포(8척), 서평포(9척), 절영도(2척), 초량목(4척)에서 적선을 분멸시킨 후 부산포에서 적선 100여 척 분멸등 총 130여 척을 분멸시키는 대전과 거두었다.

그림5 ㅣ옹포 상륙작전도ㅣ

그림5 ㅣ옹포 상륙작전도ㅣ

1593년 2월10일부터 3월 6일까지 1개월에 걸쳐 웅천왜성에 주둔한 일본군을 89척으로 구성된 조선 수군이 총 7차례에 걸쳐 공격한 전투이다. 특히 이 해전에서는 처음 4차례 유인작전이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5번째 공격 때 (2월22일)는 수군자체의 상륙군을 편성하여 적을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림6 ㅣ제2차 당항포해전 상황도ㅣ

그림6 ㅣ제2차 당항포해전 상황도ㅣ

조선 수군이 한산도 통제영에 주둔하면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한 가운데 벌인 전투로 가장 여유 있게 치른 일전이었다. 특히 이 해전에서는 광양현감 어영담이 조방자응로 수군을 총 지휘하여 적을 물리쳤는데, 1594년 3월 4일에는 10척의 전선을 맞아 어선포, 읍전포, 시긋포 등에서 모두 분멸시켰다. 이튿날인 3월 5일에는 당항포 안에 있던 일본전선 21척을 모두 분멸 시켰다.

그림7 ㅣ장문포해전 상황도ㅣ

그림1 ㅣ옥포, 합포, 적진포해전 상황도ㅣ

당시 도체찰사 윤듀수의 지휘하에 장문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육균과 수군이 총 동원된 전투였다. 도원수 권율의 통제 하에 육전의 용사들인 곽재우와 김덕령의 군이 상륙군으로 참가하였고, 통제사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은 이들을 상륙시키는 임무와 포구에 있던 적선을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림8 ㅣ칠천량해전 상황도ㅣ

그림8 ㅣ칠천량해전 상황도ㅣ

이순신이 백의종군 중일 때인 1597년 7월16일 새벽부터 거제도 칠천량에서 시작하여 진해만 전역으로 확대된 전투이다. 이 해전에서 원균이 이끈 160여 척 규모의 조선 수군은 500척 이상으로 구성된 일본수군 포위공격을 받아 140여 척이 분멸되었다. 이 해전에서 7~8척으로 추정되는 거북선도 분멸되고 말았다.

그림9 ㅣ명량수로의 조류도ㅣ

그림9 ㅣ명량수로의 조류도ㅣ

명랑수로는 다른 해전 지역과는 달리 조류의 영향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곳의 조류는 하루 네 차례, 6시간 간격으로 북서류(밀물)과 남동류(썰물)가 교차해서 흐른다.

그림10 ㅣ명량해전 상황도ㅣ

그림10 ㅣ명량해전 상황도ㅣ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으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열세한 전력으로 적을 크게 물리친 해전이다.

그림11 ㅣ조ㆍ명 연합군의 사로병진전도ㅣ

그림11 ㅣ조ㆍ명 연합군의 사로병진전도ㅣ

7년전쟁 마지막 해인 1598년도 9월부터 실시한 조ㆍ명 연합군의 대일본 공격작전을 사로병진작전이라고 부른다.

그림12 ㅣ절이도해전 상황도ㅣ

그림12 ㅣ절이도해전 상황도ㅣ

명 수군이 참전한 가운데 처음으로 벌어진 해전이었다. 1598년 7월 16일에 명 수군이 조금도 조선 수군 통제영에 합류한 후 3일 만인 7월 19일에 벌어진 해전이다.

그림13 ㅣ예교성수륙합공전 상황도ㅣ

그림13 ㅣ예교성수륙합공전 상황도ㅣ

사로병진작전의 일환으로 1598년 9월 20일부터 10월 4일 까지 총 6차례 걸쳐 육지에서는 유정이, 바다에서는 조ㆍ명 수군이 공격한 전투였다. 바다에서는 적극적으로 참전하여 전과가 뚜렷했으나 육지에서는 유정의 소극적인 참전으로 결국 고니시군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육군의 소극적인 참전 때문에 명 수군이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그림14 ㅣ노량해전 상황도ㅣ

그림14 ㅣ노량해전 상황도ㅣ

7년전쟁 마지막 전투로 1598년 11월 19일 새벽부터 정오 무렵까지 벌어졌으며 최대의 전과를 거둔 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는 등 조선의 장졸들 다수가 순국하였으나 전선은 불과 4척이 분멸된 반면 일본군의 경우 전선 200여 척이 격침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격전의 와중에 고니시는 몰래 도주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