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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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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진도/고하도] 47-2차 이순신파워리더십버스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지
고하도는 보화도, 비하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운다. 서남해 에서 내륙으로 연결되는 영산강의 빗장 역할을 하는 지리적 특성이 있다.
이 유적은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이 전략지로 활용하여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이다. 충무공은 명량대첩을 승이로 이끈 후인 1597년 10월 29일 이 곳에서 이듬해 2월 17일 고금도로 옮기기까지 108일간을 주둔하며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 섬 둘레가 불과 12km 밖에 되지 않지만 이 곳이 무너지면 호남의 곡창지대를 흐르는 연산강을 왜구에게 내어주는 셈이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지금도 진성터가 남아 있는데, 난중일기에 그 축조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비축된 군량미는 486석이나 되었다고 한다.
목포 사람들은 이충무공 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해마다 4월 28일이면 이 곳에서 공의 정신을 추모하는 탄신제를 치르로 있다.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정유재란 떄 충무공 이순신이 고하도를 전략기지로 삼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을 기리기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1722년(경종2년) 8월에 통제사 오중주와 충무공의 5대손인 이봉상에 의해 완성되었다.
비문에는 정유재란 때 이충무공이 전진기지로 고하도를 선정하게 된 경위와 전쟁시 군량미의 중요성, 인조25년(1647)에 진영이 당곶진(목포시 하당 일대)으로 옮겨가게 되어 고하도진이 폐진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오중주 통제사가 비 건립을 주도한 내용, 후임 통제사들에게 고하도진처임을 알리기 위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남구만이 지었고 글씨는 조태구가 썼다. 몸돌의 높이는 227cm 너비는 112cm 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이 비는 일제 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져 있던 것을 광복이 되면서 현 위치에 세웠다. 비각은 1949년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