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감내하는 이순신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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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49차 - 갑오년 이충무공묘소 참배 잘 다녀왔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3-02

조회 22,348

이순신포럼 회원님들께!

우여곡절이 많은 이파리 49차였습니다.
갑오년에 이충무공께 새해 인사 하러 가는 행사인데
아무도 신청을 하지 않습니다.

나혼자 가야 하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출발 일주일을
남겨놓고 갑자기 신청자가 밀려들어 28명이나 되었습니다.
급기야 평택2함대 견학(20명 이상이 되어야 견학 가능)도 신청
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서둘러서 떠나게 되었답니다.

처음부터 평택2함대 안보전시실을 갈 예정이 없었기에 출발
시간이 7시30분으로 되어 있어 나중에 출발시간 변경으로
애써 귀한 시간 내어 신청하신 하영재 수석부이사장님도 못태우고
떠났습니다.  얼마나 송구했는지 이자리를 빌어서 다시한 번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요즈음은 길이 새로 생기고 좋아져서 2시간 정도 예상했던 도착시간
보다 조금 일찍 현충사에 닿았습니다.  맨처음 입장객으로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 들러서 난중일기 원본과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둘러 볼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가졌답니다.

이어서 노승석 교수님의 [난중일기를 통해 본 자기성찰의 리더십]
특강을 듣고 현충사 보전으로 가서 참배를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둘째형인 요신의 직계 후손인 이종구 연구원님께서
하나하나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현충사 안의 고택은 장인인 방진의 집으로 이순신 장군이 이 집주인의
무남독녀 외딸에게 장가를 드셨기 때문에 이집에서 무과급제하여
동비구보로 가시기 전까지 사셨으며 대대로 이순신의 후손들이 사셔서
이순신 장군의 고택으로 불리워졌다고 합니다.

활터며 그 당시 심겨져 있었던 은행나무며 동구밖에 세워졌던 정려
등을 설명듣고 점심 식사를 하였답니다.  충청도에는 별미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후한 인심을 어느곳에도 지지 않을만큼 넉넉했습니다. 
모두 맛있게 먹었지요.  역시 함게 식사 한다는 것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좋은 촉매제인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묘소는 아산시내에서 약9Km 떨어지 어라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음봉리까지는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곳인데 많은 회원님들은 이곳을 잘 모르고 찾아온 적도 없는
생소한 곳으로 처음이라는 회원님들이 거의 대부분 입니다.

살아 생전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으니 하늘나라에서는 조금은 편안하게
행복하게 계시면 좋겠다는 뜻으로 갓 피어난 튜울립 꽃송이로 장식하고자
했습니다.  회원님들께서 한송이 한송이 바치며 묵념하는 모습이 부모님을
찾아온 선한 자식들처럼 보였습니다.

49차에는 박광용 제독님께서 탑승 하셔서 이순신 장군의 후예로서 대표
꽃다발을 드리고 모두 묵념으로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나라를 구해 주신 장군께 대한 현양 사업을 계속해서 진행 되기를
빌었답니다.  올 갑오년에도 이순신 리더십 버스가 순조롭게 잘 운행 되기를
장군님께 빌었습니다.

묘소의 주변에는 덕수이씨 충무공파 선산이 있어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형제들도 함께 잠들어 있는 곳으로 언제든지 어렵고 힘들때 찾아와서 
뵙고 가는 곳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해 보세요.  큰 힘이
된답니다.  

묘소에서 가까운곳에 해암리가 있습니다.  해암리는 예전에 삽교천이
둑으로 막히기 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항구였답니다.  지금은 방조제가
쳐지고 논밭이 생겨서 넓은 들판으로 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고 서울로 압송 되어 가자 여수에 계시는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걱정이 되어 배를 타고 올라 오십니다.  그러나 여든의 노모는 너무
연로하여 그만 배 안에서 운명 하시고 맙니다.

이순신 장군은 4월1일 옥문을 나와 백의종군 길을 걸으며 아산의 선산에 들러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가려던 차에 어머님께서 오셨다는 기별을 받고
해암리 항구로 나갔는데.... 어머님의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을 합니다.

나라에 충성 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죄를 받았고 부모님께 효도 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돌아 가셨다는 말씀을 하시며 발을 동동 구르시며 우시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없는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그 곳 해암리 그 바위를 찾아갔습니다.  일명 게바위라고도 하는데 이 역사적인 
장소를 그냥 팻말 하나로 화살표 하나로 표시해 놓았으니 얼마나 쓸쓸합니까?
우리는 기념 촬영도 하고 설명도 하고 그리고 각자 어머님에 대한 생각도 하고....

버스 안에서 1597년 4월1일부터 4월30일까지의 난중일기를 한사람 한사람씩
읽으며 그날의 이순신 장군의 슬픈 마음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모두 숙연해졌지요.
이제는 평택제2함대로 떠날 차례입니다.

거리상으로는 한시간 정도 가는 거리였지만 한 30분만에 도착 하였습니다.  
마중나온 해군 안내 사병은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고 안보 전시관에서의 
설명은 우리를 국가안보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습니다.

천안함의 잔해를 보면서 우리가 국론이 분열되면 어떻게 된다는것을 말없이
증언해 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세동강으로
나누어진 잔해는 그날의 46명의 꽃다운 청춘들도 함께 묻혀 있었습니다.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고 이순신 장군의 구국의 정신을 이어받아
후세에게도 전하는 바른 마음 가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군함도 보고 
구축함도 보고 우리 해군의 위상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끼며 평택제2함대를 뒤로
하고 평택에서 그래도 괜찮다는 설렁탕 집으로 갔습니다.

밖에서 찬 바람에 많이 추었고 적당히 출출할때도 되어 따뜻한 국물로 몸을 녹이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생각 보다는 맛있었습니다.  각자 좋은 덕담을 나누며 오늘의
이충무공 참배 행사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모두 만족해 하셨습니다.

년초에 이순신 장군께 인사 드리러 가는 행사는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내마음의 쉼표 입니다.  힐링캠프인것이지요.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 놓고 
장군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의 해답을 찾아 보는 의미있는 코스 입니다.

이제 내년 을미년의 행사를 기대해 봅니다.  대통령이나 고위인사들만 참배하는 곳이
아닌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 우리가 제일 흠모하는 영웅을 만나러 가는 행사입니다.
날씨도 좋았고 너무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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