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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리더로는 충분치 않다.

작성자 정동일

등록일 2014-07-10

조회 17,626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어느 식품 회사의 광고에서 ’으리 (’의리’ 발음을 약간 비튼 신조어)’를 외쳐대는 김보성이란 배우에게 열광하고 있다. 광고를 담은 유튜브 동영상은 300만건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TV 프로그램에서 패러디하고 있다. 이 배우가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한결같이 의리를 지켜 왔는지 이 배우의 말과 행동을 담은 ’김보성 으리 어록’과 ’김보성 으리 역사’ 등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덕분에 이 식품 회사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5% 늘었다고 한다. 평소 식혜나 수정과를 사본 적이 거의 없는 나도 최근 편의점에 들어가 작은 목소리로 ’으리’를 외치고 이 회사의 식혜 한 캔을 사 먹었을 정도로 광고 효과는 강하고 중독적이다.

왜 그럴까?

도대체 왜 한물간 배우 하나가 광고에 등장해서 문을 발로 걷어차고 가마니를 샌드백처럼 두들겨 패고 우리 몸과 우리 전통 음료에 대한 의리를 지키자며 식혜를 온몸에 들이붓는 우스꽝스러운 광고에 사회가 열광하는 걸까? 지난 10년간 한결같이 의리를 외치며 실천했던 김보성이란 배우의 진정성과 지금 우리가 처한 사회적 현실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신뢰가 사라지게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과 잘 알아서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살다가 힘들고 지치면 나도 모르게 엄마 품과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이때 진정성이란 우리에게 신뢰와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오랜 세월 김보성은 잊힌 배우였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는 의리에 살고 죽는 사람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은 각인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다 큰 어른이 무슨 의리야! 애들처럼 유치하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시각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의리를 지키며 살려는 김보성을 보면서 점점 긍정적 시각으로 변했고, 많은 사람 머릿속에 "저 사람은 딴 건 몰라도 의리 하나는 끝내줘"라는 색깔과 브랜드로 각인됐다.

세월호 사건은 리더들에 대한 불신의 기폭제가 됐다. 많은 국민이 "아~ 국민이 이렇게 위험에 빠져도 정부 관료와 정치인이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반면 없는 살림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 기부했던 김보성의 한결같은 의리와 진정성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광고가 효과적인 것은 "이 사람만큼은 광고주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아메으리카노(아메리카노의 김보성 버전) 대신 식혜를 먹을 것 같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김보성의 행동은 세월호 참사조차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잔머리를 굴리던 일부 정치인의 행동과 확실히 다르게 보였다.

비슷한 이유로 6월 12일 오후 가수 김장훈이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하는 순간, 어둡고 침통한 실종자 가족들 얼굴에 작고 조용한 미소가 피어났다는 신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실종자 가족들과 저녁 식사까지 하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들과 금방 하나가 되어 진심 어린 위로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 관료, 유명인이 그 체육관을 찾았지만, 김장훈처럼 환영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김장훈이란 가수가 오랜 시간 사회 곳곳의 약자를 위해, 그리고 국가를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노력해온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적어도 이 사람만큼은 자기 이해관계나 숨겨진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여기를 찾았을 것"이란 확신을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렇게 열린 사회가 될수록 진정성 있는 리더의 존재가 더욱 빛을 발한다.

6월 초에 시행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 후보 가운데 부동의 1위를 달리다 낙선한 어느 후보의 실패 원인도 진정성의 부족이었지 역량과 지식의 부족은 아니었다. 고시 3관왕이자 ’공부의 신’으로 불렸던 그도 "자기 자식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서울시의 수많은 아이를 책임진단 말인가"라는 유권자의 마음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반대로 경질 1순위였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얼마 전 개각에서 유임된 이유도 두 달간 단 하루도 사고 현장을 떠나지 않고 가족들과 아픔을 같이한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부하들의 자발적 추종과 마음을 얻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능력이 뛰어난 상사가 되려고 하기보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일관된 행동을 통해 그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부터 시작하자. 나는 부하들에게 "딴 사람은 몰라도 저 상사만큼은…" 이란 진정성이 넘치는 리더로 인식되고 있는가?

진정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이벤트가 아니다. 일관된 생각과 말 그리고 언행일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값지고 귀하다. 요즘처럼 혼란하고 불안한 상황이 계속될수록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가 아닌 진정성임을 기억하자.

 
                                정동일 / 연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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