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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믿어주는 데서 생긴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9-02-17

조회 17,660

위문후(魏文候)가 중산(中山)을 치고자 하여 책황에게 대장을 천거해 달라고 하자 책황이 악양(樂羊)을 천거하였다. 그러나 대신들은 악양의 아들이 중산에서 벼슬을 하고 있음을 들어 악양에게 병권을 맡기는 것을 반대하였다.

책황이 재차 권하였다.

“악양은 아들로부터 중산에 와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중산군이 무도하다면서 불응하였습니다. 주군께서 그를 쓰시면 꼭 성공할 것 입니다.”

문후는 책황의 건의를 받아들여 악양을 대장으로 삼아 중산을 공격케 하였다.

명을 받은 악양은 5만 대군을 거느리고 출동하여 중산군과 대치하였다. 악양은 중산군이 산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불을 지름으로써 혼란시켜 초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중산자는 성안으로 피한 다음 악양의 아들 악서를 불러 말하였다.

“네가 적을 물러가게 하면 큰 상을 내리겠다.”

악서는 성에 올라가 아버지에게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사정하였고, 악양은 한 달 동안 군을 움직이지 않을 테니 그 동안 중산자를 설득하여 항복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중산자는 항복하지 않았다. 악양은 다시 한 달의 여유를 더 주었다. 이런 식으로 세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중산자는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성봉장 서문표가 악양에게 물었다.

“장군께서는 왜 여러 달 동안이나 성을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까?”

악양이 대답하였다.

“중산군이 백성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성을 공격하게 되었소. 그런데 만일 너무 급히 공격하면 성안의 백성들이 상하게 될 것이오.세 번이나 저들의 말을 들어주었는데도 저들이 불복한 이상 이제 우리가 성을 공격해도 백성들은 우리의 공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오.”

한편 문후 주변에는 악양이 중산군과 대치한 지 석 달이 지났는데도 성을 얻지 못하자 참소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악양이 중산군을 이기게 되면 위나라를 역공할 것이라는 둥, 중산을 얻으면 절반은 자기가 가질 것이라는 둥 하며 그의 면직을 주청하였다. 문후는 그들이 올린 상소문을 궤짝 안에 모아두었다.

마침내 악영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악양 군이 맹렬하게 공격하자 위기에 몰린 중산자는 악서를 높은 장대에 매달아 성 위에 세워놓고 악양을 협박하였다.

악서가 외쳤다.

“아버지!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그러나 악양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너는 남의 나라 벼슬을 살면서 주인으로 하여금 승전하게 하지 못하였다. 또 내가 네 주인을 설득하여 화평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기회를 살리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살기를 바란단 말이냐?”

악양은 아들을 행하여 활을 겨누었고, 중산 사람들은 곧 악서를 죽였다. 그런 다음 악서의 죽은 몸으로 국을 끓여 머리와 함께 악양에게 보내어 악양의 기세를 꺽으려 하였다.

사신이 오자 악양은 아들의 머리를 향해 말하였다.

“너는 무도한 임금을 섬겼으니 죽는 것도 마땅하다.”

그리고는 사신이 보는 앞에서 국 한 그릇을 모두 마셨다.

악양은 사신을 행해 눈을 부릅뜨고 일갈하였다.

“너의 임금이 보낸 선물을 잘 맏았다. 이 선물에 대해서는 성을 깨뜨리는 날 대면하면서 사례할 것이다. 우리 군중에도 고기를 삶는 가마솥이 있어서 너의 임금을 기다리고 있다.”

사신은 혼비백산하여 물러갔다.

대장의 결심이 이와 같은 것을 안 악양의 병사들은 치열하게 중산을 공격하였다. 마침내 중산은 악양의 손에 떨어졌고, 중산은 솥에 삶기기 전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악양이 승전하여 돌아오자 문후는 큰 잔치를 베풀었다. 문후는 직접 술을 따라 악양에게 권했는데 악양은 자못 자만하는 빛이 있었다.

문후는 좌우에 명하여 궤짝 두 개를 가져오게 하였다. 궤짝은 단단히 봉해져 있었는데, 악양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며 생각하였다.

‘이 속에는 금은보화가 들어 있을 것이다. 임금께서 군신들이 시기할까 염려하여 비밀리에 나에게 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여 궤짝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자기를 모함하는 상소문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악양은 노라고 감탄하여 이튿날 문후 앞에 엎드려 아뢰였다.

“중산의 승전은 순전히 안에서 주군께서 저를 믿어주신 때문이었습니다. 신은 다만 견마(犬馬)의 노력을 거기에 약간 보탠 정도입니다.”

문후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가 있어도 내가 아니면 경을 등용하지 못했을 것이요. 내가 있어도 경이 아니면 임무를 다하지 못했을 것이오. 장군은 노고가 많았소. 마땅히 봉작을 받아야 하오.”

문후는 그에게 영수(靈壽) 땅을 주고 영수군(靈壽君)이라 칭하게 하는 한편 많은 보배를 상으로 내렸다.



악양에 대한 문후의 믿음이 승리로 보답되었기에 망정이지 악양이 신하들의 참소처럼 정말로 배반을 감행했다면 문후의 믿음은 지혜가 아닌 어리석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후의 믿음을 어리석음이 아닌 지혜가 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재론의 여지 없이 그것은 문후의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력이었을 것이다.

문후는 전국시대에 드물게 보는 명군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복자하(卜子夏),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등 세 사람의 스승을 모셨고, 위하에 악양, 오기(吳起), 서문표, 책황, 위성(魏成)등 뛰어난 신하를 많이 거느렸는데, 이 같은 사실은 그가 인재를 잘 알아보았다는 증거가 된다.

복자하는 공자의 십대제자로 꼽히는 인물이고, 서문표 또한 공자 계열의 사람이다. 이로써 볼 때 공자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가르침이 간접적으로 문후에게 전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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