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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하
2014-09-25
22,701
2014. 9. 19(금) ~ 20(토), 이순신 포럼에서,
충무공 이순신 제독 리더십을 연구하는 테마여행으로
진해 해군사관학교와 저도?島해군기지를 다녀왔습니다.
이순신포럼은 이부경 이사장이 "이순신 제독의 유적지, 전적지 답사를
통해 이순신제독의 리더십을 배우고 익혀,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경제전쟁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나아가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설립해, 혼신을 다하여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체입니다.
답사를 위해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을 운행하고 있는데 이번이
51차였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을지로3가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7시에 출발을 했습니다.
반가운 인사들을 서로 나누고 이어서 김덕수 (예비역) 제독의 특강
<충무공 이순신 "승리의 원동력은 무엇일까?">를 들으며 내려갔습니다.
11시 30분 스케쥴대로 진해에 도착하여, 진해 전통의 맛집<진상> 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055-547-1678) 해초비빔밥이 특별했습니다.
1시 정각에 해군사관학교로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별셋, 중장이 우리를 맞아줬습니다.
해군사관학교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일행인 박광용 김덕수 제독(예비역)이 선배라고 했습니다.
교장의 인삿말을 듣고 학교를 둘러봤습니다.
박물관 거북선관람 생도기숙사...
부두로 이동했습니다.
저도?島해군기지로 가기위해.
사실 여기가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였습니다.
군軍에서는 <저도해군기지>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대통령 별장>이라고 부릅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이라는데 진해 해군기지에서 군함으로 50분
정도 걸렸습니다. 저도(猪島)라는 명칭은 섬의 모양이 돼지猪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며, 도섬이라고도 합니다.
면적 135.000 평, 해발 85 m, 해안선 길이는 3150 m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부터 일본군의 통신소와 탄약고로 사용되었고,
6·25전쟁 중인 1950년에는 주한 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되었습니다.
1954년 해군에서 인수하여 관리하기 시작한 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여름철 휴양지로 사용되었고,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靑海臺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1975년에는 망와도와 함께 해군통제본부 소재지인 진해시로 편입
되었다가 1993년 11월 대통령 별장 지정이 해제되면서 같은 해 12월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로 환원되었습니다.
저도?島에는 2층 규모의 청해대 본관과 경호원 숙소, 관리요원 숙소,
팔각정과 산책로, 전망대, 9홀 규모의 골프장과 해안에 200여 m의
인공 백사장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섬에는 최장 수령樹齡 200년,
둘레 5m, 높이 20m에 이르는 아름드리 해송들이 들어차 있어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여장을 풀고 산책로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산꼭대기 전망대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거가대교가 .....
명색이 대통령별장이 있는 섬이라는데 (그것도 조막만한 섬인데)
그곳을 거가대교가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2010년에 총길이 8.2㎞의 거가대교가 개통이 되었는데 부산광역시에서
가덕도 ~ 대죽도 ~ 중죽도 ~ 저도?島를 거쳐 거제도와 연결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왕이 계시는 영국이나 지엄한(?) 대통령이 있는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통령별장이 있는 작은 섬을 가로 질러 다리가 지나가다니....
경호나 안전에 어려움이 있을터인데 ....
대한민국이, 대통령이 ’독재를 한다’ 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이나란데......
대한민국 ! 참 좋은(?) 나라입니다.
저녁을 먹고는 앞쪽 해변가에서 작은 열린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노래(목사님부부) 와 사회등 재능기부자들이 앞장을 섰고 우리들의
흥을 돋궈 밤이 무르익었습니다. 젊은(?) 회원들은 여흥을 더욱
즐겼던 것 같던데 우리부부는 일찍 방(#405)으로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을 먹고는 다시 군함에 올라 진해로 왔습니다.
진해항으로 들어오면서 보니 진해군항은 과연 세계열강들이
탐을 낼만 한 천연의 요새였습니다.
해군작전사령부 안에 있는 잠수함박물관을 둘러보고 근처 이승만
대통령 별장도 구경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건물이었는데 실내에 있는 가구나 부엌살림들이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냥 서민들의 집안이나 별다름이 없었고 오히려 초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별장에서 서쪽으로 약 50m 떨어진 해변 가까이에 육각정이라 불리는
육각형의 정자가 있는데,
1949년 8월 이승만 대통령과 장제스 총통이 여기에 함께 모여 앉아,
태평양 동맹 결성을 위한 예비 회담을 개최하자고 필리핀의 퀼리노
대통령에게 제의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해 해군사관학교와 해군작전사령부 등을 둘러볼 때, 우리들
버스 앞에서 이틀간 convoy한 사람은 아릿다운 여군 중위였는데
해사출신이 아니고 대학을 나와 임관을 한 장교라고 했습니다.
이승만대통령별장을 뒤로 하고 진해를 떠났습니다.
한참을 달려 진주에 도착했고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소고기 육회를 얹은 진주식비빔밥이었는데
참 맛 있었습니다. 배가 좀 고팠던걸까요......
점심을 먹고는 진주성, 박물관(임진왜란), 촉석루를 둘러보고
저녁8시 반에 서울엘 도착했습니다.
해군 충무공 리더십센터에서 정리한 <충무공이 주는 현대적 행동 지침>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며 끝을 맺을렵니다.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2.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무과를 준비한지 10 년만인 32살의 나이에 겨우 합격했다.
3. 좋은 지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오지를 전전하면서 파직과 감직을 겪기도 하였다.
4.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의 지시에 불응하여 몇 차례나 불이익을 받았다.
5.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말라.
나는 7년 전쟁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6.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출세를 위해 권문세가와 결탁하지 않았고 능력껏 47살에 제독이 되었다.
7.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나는 스스로 전쟁물자를 준비하였고 40여회의 해전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8.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공을 세우고도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9.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패잔 전선 10여척을 홀로 수습하여 130여 척의 적선을 물리쳤다.
10.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전쟁터에서 보냈다.
11.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탄이 가슴을 뚫을 때에도 전황을 염려하여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관리자 | RE: 진해 대통령 별장에서의 1박 박 사장님, 이상태입니다. 메일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저도 별장 내용에 약간 착오가 있으신 것 같아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관여했던 프로젝트였기에). 1954년 해군에서 인수하여 관리하기 시작한 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여름철 휴양지로 사용되었고,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靑海臺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저도 별장은 1972년경 현대건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위하여 처음 지었으니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여름철 휴양지로 사용되었다'는 내용은 잘못 전해진 것 같습니다. 저는 별장을 짓기 전, 당시 청와대 통신계장 (성함이 신화순씨로 알고 있고 후에 LG기공 사장님도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제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 등 여러분과 함께 통신공사 설계 때문에 저도를 답사했습니다. 그때 일행이 진해에 있던 '해군통제부'라는 건물도 둘러보았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께서는 그 건물을 별장으로 사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상태 올림 |
2014.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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