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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4-11-11
19,456
이순신포럼 회원 여러분!
잃어버린 우리땅 - 대마도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국수속할 때 사람도 많고
붐비는 대합실에서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땅에 가는데 이런 수속절차는 필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나서 속상했습니다. 부산에서
49.5K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눈으로 보이는
저 섬이기 대문에 더욱 더 그랬습니다.
조선침략의 전초기지였던 대마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현해탄을 건너며 그 옛날
선조들의 애환을 되새겨보며 가슴아린 역사의
사실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대마도, 남쪽의 이즈하라에서는
세끼부네를 만들고 북쪽의 오우리만에서는 출진을
기다리는 배들로 북적이는 대마도의 단면을 그려 봅니다.
이번에는 단촐하게 15명이 다녀왔습니다. 더 이상 좌석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대마도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등산객이었고 낚시며 자전거로 그리고 캠핑하는
여행객들로 450석의 오션플라워호(부산, 대마도간 페리)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복작하고 번거로운 출국수속과 대마도에서의 입국수속이
끝나고 이즈하라항의 유적지를 도보로 이동하며 하나씩
둘러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섬은 자동차로 다닐 수 없을만큼
골목길들이 어어져 있었고 유적지들이 바로 옆에 옆에 나란히
있었습니다.
처음에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를 둘러 보았습니다.
이즈하라항에서 걸어서 5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있었는데 선생의 순국비는
대마도로 잡혀온 최익현 선생님의 강직한 성품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답니다.
면암 최익현 선생님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이고 대마도에서 순국하신
일제에 맞서 싸운 조선의 최후의 선비로서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용감하게 의병을 일으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순국비가 세워진지도
벌써 10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순국비 앞에서 묵념을 하며 잠시나마 선생의 옳곧은 뜻을
생각하며 나라의 운명은 우리가 만든다는 현실을 직시하였습니다.
수선사에서 나와 대마도 역사민속 자료관으로 발길을 옮겻습니다.
조선통신사의 기념비, 고려문등 우리와 관계 깊은 역사의 현장을
둘러 보았답니다. 바로 옆에는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도 있었고...
나라의 주권을 잃고 남의 나라에 끌려와서 원하지도 않는 일본인과
결혼하고 그 숱한 수모와 무례한 대접을 받으며.... 가슴아팠습니다.
자료관 뒤로 보이는 뒷산이 꽤 높았습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아리아케산이었는데 산 중턱에 성터가 남아 있는것이 보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쌓았다고 하는데 정말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쌓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팔번궁 신사도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삼한을 정복했다는 가상의 인물
신공황후를 모셔 놓았가도 하는데 .... 다른 한쪽은 고니시 마리아를 모셔
놓은 신사도 있었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카톨릭 신자이고 물론 그의 딸 마리아도 신자이지요.
더우기 대마도 도주의 소 요시도시(종의지)에게 시집을 갔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참패하여 처형을 당합니다. 대마도 도주 소요시도시는 고니시 마리아와
이혼하고 대마도에서 그녀를 쫒아냅니다.
그녀는 대마도를 그리워하다 생을 마치게 되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신사에
모셔놓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