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견내량 입니다. 한산대첩 때 이곳에 머물고 있던 와자카 야스하루의 배를 한산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 전법을 활용하여 대첩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신거제대교가 놓여져 있어 부산에서
통영까지 약 2시간이면 올 수 있습니다. 이 좁은 물목에 집결해 있던 왜적들은 한산대첩 후에 통영의
판데목(착량)으로 떠내려 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약 9,000명의 왜군을 수장시킨 대첩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산대첩이후에는 절대로 조선수군과는 싸우지마라고 문서로 지시했습니다.
이순신이 무서웠습니다.
한산대첩이 끝난후에 왜군들의 시체는 이 곳으로 흘러들어왔지만 워낙 물목이 좁아서 떠내려가지 못하고
병목현상을 일으키며 맴돈곳이랍니다. 이곳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해전때 돌아가시고 난
이듬해에 통제영의 민초들이 초가집을 짓고 제사를 맨처음 올린 곳이라고 합니다.
그 후 이순신 장군의 10대손인 이규석 통제사께서 지금의 착량묘를 고쳐 짓고 마을의 아이들도 글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엿다고 합니다. 왜군들의 원혼들이 매일밤 울부짓어 이순신 장군의 사당을 지어
이순신 장군께서 호통을 치셨다고하는 야사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그 좁은 물목의 건너편은 미륵도 입니다. 일제 강점기때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저터널을 똟었습니다.
우리 조상의 목을 밟고 다니지 말라고 하는 야사도 있는데 어쨌든 약 500m에 달하는 해저터널은 동양에서
맨 처음으로 굴착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자동차는 다닐 수 없고 인도로만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는
걸어서 건너편 미륵도의 궁전횟집까지 갔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통영에서 제일 좋은 횟집에서 오늘 하루종일 천안에서부터 달려온 회포를 소주에 풀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더우기 협력업체 사장님들과 모처럼만의 한 자리를 마련했으니 분위기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동안 말 할 수 없었던 이야기, 민망했던 이야기등 업무에 관계가 있던 없던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