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영웅이 필요한가
2001년 9월 11일,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위기상황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미국인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을 받은 직후, 줄리아니 시장은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밤낮으로 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과 소방서, 병원, 시체 안치소, 금융가등을 누비며
재해 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런 리더십 덕분에 줄리아니 시장은 2001년 <타임>지가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고,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가 시장으로서 명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임기의 마지막 몇 주 동안 쌓아올린
재해 복구와 관련된 놀라운 업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줄리아니 시장이 재임 기간 동안 보여준
독재 스타일 리더십에 대해 아주 다른 평가를 내렸고, 그가 이룬 공과에 대해 엄청난 논쟁을 벌였다.
특히 줄리아니가 중점 업무로 추진했던 뉴욕 공립학교 교육 개혁은
많은 사람믈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실패로 끝났다.
줄리아니의 성공과 실패 사이에 왜 이런 큰 차이가 있는가?
위기 상황에서 아주 효과적이던 그의 리더십이 왜 다른 상황에서는 먹혀들지 못했는가?
근본적인 차이는 상황마다 리더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무역센터 붕괴는 어떤 한 사람이나 조직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위기이다.
이런 위기에서 줄리아니 시장은 뉴욕 시민과 전 세계를 향해 "하나로 뭉쳐야 한다"라는
아주 적절하고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시장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가 뉴욕 공립학교 개혁 문제에 관해 밝힌 견해는 전혀 달랐다.
그는 교육 행정 부서 관리자와 담당자에게 "총책임자는 나다. 당신들은 내 명령만 따르면 된다"라는
실망스러운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교육계가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기 혼자서 주도권을 쥐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지 않았다.
이때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내 방식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함께 힘을 모아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줄리아니 시장이 실패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의 실패를 속으로 즐거워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영웅적 리더십은 사실 할리우드 영화 또는 역사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나를 따르라’라는 말에는, 한 손으로 말고삐를 멋지게 쥐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존경스러운 장군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에 빠져 이런 영웅적 리더십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려다 실패를 겪는다.
그리고 이런 영웅적 리더십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구경만 하던 동료나 부하 직원들도 영웅과 함께 실패하고 만다.
조지 워싱턴이나 윈스턴 처칠같은 인물은 위기의 순간에
동료와 부하들이 조직에 적극적으로 헌신하도록 이끈 진정한 영웅적 리더이다.
하지만 이런 영웅적 리더들은 현실에서는 보기 드물기 때문에 그만큼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브루스 윌리스 같은 영화 주인공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항상 리더만 바라보는 부하 직원들은 리더의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그가 위기 상황을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리더는 혼자서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책임까지도
도맡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리더가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책임을 짊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일을 혼자 떠안게 된다.
리더가 주변 사람들과 책임에 대한 부담을 나누거나 함께 일하려 하지 않고,
영웅적으로 행동하려고 들면 크게 실패하고 만다.
자칭 영웅적 리더 혼자 책임을 떠맡고, 부하 직원들은 리더만 의지한다면 그 조직의 실패는 자명하다.
로저 마틴 著 The Responsibility Virus / 정철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