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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숙
2017-11-09
20,893
<르포-100차 이순신 파워리더십 버스 탑승기>
바다 위에서 만난 장군의 사랑과 위엄
-준비와 실행, 점검과 결단의 순간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제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어떤 전투를 그리며 출전의 순간을 기다렸을까?
제 100차 이순신 파워리더십 버스에 탑승하면서 문득 전투에 임하는 장군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불멸의 장수 이순신은 단연코 전투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도 승기를 잡고, 그 순간을 준비하면서 냉철하게! 그의 가슴 속에서는 분명 피흘리며 죽어가는 백성의 아픈 모습과 유린 당하는 조선 산하에 대한 연민과 고통, 그리고 일본군들에 대한 정의의 심판을 위한 거룩한 분노가 있었을 것이다.
2017년 10월 20일 오전 7시, 두 대의 100차 이순신 파워리더십 버스(이하 이파리 100차 표기)는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지(現 서울시 중구 건천동 명보아트시네마 앞)에서 출발했다. 이름하여 ‘저도(청해대)/해군 안보기지 견학’. 대한민군 해군과 함께 하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 리더십을 연구하는 테마여행이란 부제를 달고 출발하며서 우리는 대한민국 안보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삶을 담보하고 있는 ‘안보’라는 단어. 그것이 주는 무게감이 이파리 100차 버스 안에서 실감하는 자리였다. 강의는 박광용 前 제독(1호차)과 김덕수 前 제독(2호차)이 맡았다. 주제는 ‘임진왜란 발발과 조선의 대응(유비무환의 리더십을 중심으로)’였다.
진해는 천혜의 요지라 한다. 그곳에 자리잡은 해군사관학교. 이파리 100차 버스의 묘미는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열병식이었다. 때마침 우리가 가는 날 생도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해군 제복을 입은 사관생도들이 발걸음도 힘차게 질서정연하게 우리의 앞을 지나칠 때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들이야말로 이순신의 후예로 우리의 바다를 지킬 동량들이 아닌가. 열병식 사열을 받고 일행은 전시된 거북선을 관람했다. 포가 적이 있는 바다를 향해 발사될 때, 조선수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선에 오를 때의 불안감도, 죽음의 공포도 탄환을 발사하는 순간에는 모두 잊고, 오직 목표물을 맞힐 생각만 했을 것 같았다. 지휘관의, 리더의 확실한 명령이 그들에겐 어떤 용기를 주었을까? 어쩌면 조선 수군의 최강 무기가 ‘이순신’이라는 확실하고도 명쾌한 리더가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이순신의 어떤 리더십을 적용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이순신 리더십 버스를 탈 때마다 집중하게 되는 생각이다. 몇 번 타지 않은 이순신 리더십 버스에 오르면서도 이런 생각을 가는데, 평균 한달에 한번, 100회차까지 이순신 리더십 버스를 운영해온 이순신 포럼 이부경 이사장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저 이순신의 리더십과 그의 인품과 덕장으로서의 면모를 따라 다니면서 그것을 삶의 현장에서 살려내는 일. 그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이순신 포럼을 이끌어 온 이부경 이사장이 새삼 존경스럽다.
해군사관학교 열병식을 본 후 우리는 사관 생도들의 생활관으로 이동했다. 사관학교의 발자취를 전시한 해사박물관과 생도들의 생도사 등을 보면서 해군과 친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생도들의 생활관은 예전엔 고구마 밭이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던 박광용 제독은 사관생도 시절 배가 고파서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 서리를 했던 일화를 공개한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배고픔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던 시절. 그 시절 나라를 지키기 위해, 또는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사명에 충실했던 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박광용 제독의 도움말이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해군이 머리를 7센티미터를 기르는 이유를 아세요? 물에 빠졌을 때의 부력을 생각해서입니다. 해군의 제복에는 넥타이를 매는 이유는 비상시 넥타이가 지지대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 때문입니다.”
복장과 머리카락까지 생명을 생각하며 설계되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김덕수 제독 역시 주변의 사람들에게 해군에서의 생활을 전해주면서 이파리 100차 승객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었다.
이제 군함을 타고 저도로 들어갈 시간이다. 해군에게 적은 전투를 치러야 할 사람이나 군함만이 적이 아니라고 한다. 첫째는 자연과 싸워야 한다. 파도, 바람, 조류가 수시로 바뀌고 거기에 따라 지휘관의 결정이나 명령도 달라진다. 두 번째는 장비와 싸워야 한다. 작은 장비 한 개라도 고장이 나면 배가 멈추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에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협수로를 지나갈 때는 모든 병사가 전투 태세로 임한다고 한다. 각자 자기가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덕장 이순신의 유비무환의 리더십과 맞닿는 지점이란 생각이 든다.
오후 3시 40분. 일행은 군함에 올라 진해를 출발해 오후 4시 40분에 저도에 도착했다. 저도의 밤. 하늘과 바다가 여린 보랏빛이다. 군함에 미리 켜진 불빛이 반짝인다. 멀리 크고 작은 섬들이 보인다. 숙소 앞 소나무 아래서 깊은 숨을 내쉰다. 달다. 바람도 공기도 숨도......달다. 아름다운 저녁이다. 저도의 밤이 깊어간다.
100차 이순신 파워리더십 버스를 탑승한 소중한 인연들. 100차의 시간 속에서 함께 해왔던 사람들, 그리고 이날 처음 이순신 리더십 버스를 만난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 함께 100회차를 축하하며, 이순신 리더십을 생활화 하자는 취지로 작은음악회가 열린다. 이순신 리더십 아카데미 8기 수료자 김효석(전문 MC)의 사회로 작은음악회의 열기가 더해 간다.
이 자리에서 이순신 포럼 이부경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여자가 무엇을 하겠는가 왜 하필이면 이순신이야 몇번 하다 말겠지 등등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가 100회차를 맞이하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감개무량 하다는 인사말을 할때 모두 숙여해 지며 앞으로 우리가 더욱 더 계승 발전 시켜야지요 하며 다짐을 하였다.
재능기부로 하모니카 연주가 시작됐다. 경쾌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해준 이는 신재만씨. 인생 2막을 전업주부로 살면서 하모니카로 재능기부를 한다는 멘트를 날려 박수를 받았다. 깊어가는 가을밤, 저도를 감싸고 도는 하모니카의 선율 속에 우리 모두 빠져들었다. 이어진 초대가수 탐진씨의 무대와 참석자들의 장기자랑으로 자축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저도의 아침. 우리를 태우고 저도로 온 군함은 밤새 우리와 함께 있었다. 아침 명상과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오니 군함의 푸른 해군 깃발이 먼저 아는체를 한다. 병사들의 소리가 들린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바다가 반짝인다. 까마귀들이 해변가에 모여 신나게 떠들어댄다. 바다가 시리도록 푸르다.
2017년 10월 21일 오전 7시 30분 경의 풍경이다.
해군은 15분 전에 대기 예령을 울리고 예정된 시각의 오분전에 출발한다. 이것이 원칙이란다. 육지에서의 정시 출발 원칙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삼십분전부터 대기한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구령이 들리지 않으미 신호로 얘기한다. 깃발로 얘기한다. 노량해전 리더십 버스를 탔을 때 복원해 놓은 거북선 안에서 봤던 수많은 깃발들이 떠오른다. 장군 역시 명령을 깃발로 하지 않았던가. 신호라는 것이, 약속이란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특히 전시나 위급 상황에서의 약속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군함과 군함 사이. 승선하기 전, 선창의 끝부분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섬들이 둥글게 늘어서 있다. 출항 오분전. 방송 후 이내 배가 출발한다. 이순신 파워리더십 버스의 또 하루가 활짝 열리고 있었다.
진해항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를 맞이한 곳은 잠수함 사령부. 잠수함 사령부 영내에 들어서 잠수함 박물관을 들어섰다. 잠수함 박물관의 외형은 신기하게도 잠수함 모형이었다. 우리나라 해군 잠수함은 현재 장보고함 등 9척이 구비돼 있고, 앞으로 18척을 구비할 예정이라 한다. 좁은 잠수함 안에서 근무하는 해군들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와를 인 아담한 양옥.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다르다. 하지만 분명 그도 대한민국을 사랑했을 것이다. 별장 뒤뜰에 무궁화 한그루가 당당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무궁화 나무 아래서 생각하고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리더는 무엇을 바라보며 달려야 하는가. 그 외로움과 고민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무궁화가 지켜본 전쟁 중 .....드디어 이지스함을 타는 시간이 다가왔다. 부두에 정착해 있는 이이율곡함.
우리나라의 첫 번째 이지스함이 새종대왕함이고, 우리가 승선할 율곡이이함이 두 번째 이지스함이다. 축구장 1.6배의 크기라 한다. 세계에서 이지스함을 가진 국가는 5개국이라니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신의 방패라 불리는 이지스함의 팔각형 레이다는 최첨단 장비로 공중에서 천개 이상의 적의 움직임을 방어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섬세함에 가히 혀를 내두른다.
후미 갑판에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 승선할 때 태극에게 예를 갖춰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군함은 그 자체만으로 바다에 나가면 하나의 대한민국 영토가 된다고 한다. 처음 들은 얘기다. 군함은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유일한 존재다. 대한민국 또하나의 영토에 승선을 하고 항해한다. 해군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진다. 우리는 때마침 불어온 바닷바람에 힘차게 나부끼는 태극기에 목례를 한 후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선실과 선실을 이어주는 좁고 긴 통로. 이 배에서 생활하는 해군들의 예사롭지 않을 생활을 그려본다. 긴 통로를 가파른 사다리를 올라 드디어 갑판에 올랐다. 하늘과 구름과 산과 바다와 함께 이지스함이 굳건히 서있다. 레이다가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모두들 감탄한다. 깃발이 나부낀다. “웰컴! 환영합니다.”라는 깃발이란다. 그 곁에 검은 깃발이 게양돼 있다. “이 배에는 함장이 타고 있지 않습니다.” 함장의 부재를 알리는 깃발이다. 설명이 모두 신기하기만 하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것 또한 얼마나 즐거운가. 배 선두에는 또 대한민국 해군기가 걸려있다. 참 자랑스럽다.
제해권. 임진왜란 당시에도 이순신 장군이 남해의 제해권을 틀어쥐고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가. 옥포해전, 한산대첩, 명량대첩......임진왜란 당시에도 이름을 날렸고, 지금도 미래에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들이 떠오른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의 국운 앞에서 의연히 적과 맞서 싸웠고, 승리해 재해권을 지킨 이순신의 수많은 전투들이 눈 앞에서 흘러가는 듯 하다. 육지에서의 일상에선 느끼지 못했던 ‘제해권’이란 말이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다. 이파리 100차 버스에서 느낀 거부할 수 없는 애국심은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정박한 이지스함에서 더욱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이지스함을 직접 만난 것은 모두의 마음에 벅찬 느낌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우리는 깊이 이순신을 만나고 대한민국을 만났다. 각자 삶의 지향이 다를지라도, 아름다운 대한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같을 것이다. 이순신의 이름을 걸고 떠난 우리 이파리 100차 참석자들. 각자의 삶 속에서 그 이름값을 하면서 이순신의 리더십응ㄹ 하나씩 실천해 나가길 소망하는 소중한 여행이었다.
<난중일기나 장계를 보면 항상 판옥선보다 탐망선을 더 많이 운용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적의 정보를 철저히 수집해서 미리 대비하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전투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사전에 정보를 취득하고 왜적의 기습을 차단하고 선승구전으로 승리함으로서 부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합니다.
또한 수집한 정보는 항상 검증도 하였습니다. 확실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서 다른 척후병들이 보고한 정보를 비교 분석하고 적의 동향을 파악해서 전쟁에 대비하였습니다.> -이부경 저 ‘이순신의 리더십 노트’ 중에서.
제 100차 이순신 파워리더십 버스를 마치면서 이부경 이사장의 책 중에서 한 부분을 발췌하고 음미해 본다. 이번 100회 이파리의 주제가 유비무환의 리더십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