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 하여 그런 광오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조선에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치겠다는 계획. 무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정말 대단한 스케일의 포부를 가지고 있었던지, 아니면 2차대전 당시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것 같은 일본인의 본성인지..
- 우리 조선의 당시 국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이 조선침략을 준비한 것은 1591년 가을이고, 출병은 그 이듬해 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1591년 초에 이순신장군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다. 이순신장군은 부임하자마자 거북선을 건조하고 현자총통 등 무기들을 제작하는 등 조선 해군의 전력을 정비한다. 이런 절묘하고 기막힌 타이밍의 역사적 배려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라의 국운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되지 않는다.
- 특히 동래성을 침공하기 하루 전인 4월12일에 이순신 장군은 천자총통, 현자총통 등 모든 포들을 가지고 실전에 대비한 전투훈련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같이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동래성 함락후 불과 23일 후에 벌어진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에서 왜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저 유비무환이라고만 했는데.. 그 완벽한 대비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이순신장군의 미래를 꿰뚫는 예지적 통찰에 기초한 것이었다.
진정 난세의 리더는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과 통찰력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가.
- 그리고 유성룡의 '수영지절'에 대해서도 시인이자 이순신 연구가이신 조신호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선비는 자신의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