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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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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꾸라 만개한 아름다운 성터, 그 씁쓸함에 대하여
다만 이순신을 공부하기위해 후쿠오카까지 갈 일은 아니었다.
이부경 박사님 강의 중에 2차 진주성 전투의 참혹사는 아주 날카로운 자극으로 다가왔다. 더 선명하게 느끼고 더 저리게 아파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저 인문학적 흥미에 해맑은 얼굴(아니지만)로 앉아있다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참혹했던 그 전쟁에 대해 좀 더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무거운 호기심에 나는 후쿠오카로 따라나섰다. 산뜻한 한 번의 여행을 즐기자는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가현 가라츠. 조선침략의 전초기지를 밟았다.
조선침략을 위해 히데요시가 8개월 만에 지었다는 히젠나고야성. 마침 사꾸라 만개하여 마치 공원 같은 그 언덕 위에다 광기어린 그 성이며 부속 건물들을 가상현실처럼 그려 넣는 상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임진란 전후 사정에 해박한 식견으로 과문한 내게 큰 놀라움과 가르침을 주신 일행 분들도 자못 감회가 깊은 듯 돌아설 기색 없이 이런저런 대화들로 저물어가는 성터를 오래도록 서성이고 있었다.
바라다 보이는 주변 리아시스식 해변 구석구석에서는 30만 침략군이 전쟁 채비에 열을 올렸을 것이다. 성위에서는 전쟁 미치광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행궁”에 행차하는 날을 상상하며 눈초리 찢어지게 웃음 지었겠지.
이들이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얼마나 잔인한 전쟁을 벌였는가를 들을 때 내 머리 속에는 성안의 모든 백성을 몰살시켰다는 진주성 참상이 오버랩되어 가득 차올랐다.
파죽의 기세로 전 일본을 제패한 후 이들의 식지 않는 전쟁광기가 조선으로 뻗칠 때, 우리는 어떠했는가? 아무생각 없이 강의 듣고 앉아있던 내 모습처럼 그저 해맑은 표정이지 않았겠는가?
침략을 감행한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그의 정권도 무너지고, 침략을 당한 조선은 국토와 백성이 완전 쑥대밭이 되고, 원정군 명나라도 결국 시름시름 멸망하는 형세가 된 임진왜란.
아무도 승자는 없고 처절한 패자만 남긴 그 역사를 우리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진지하게 마주보아야 할 일이다.
전후 새로운 실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과 화친해보겠다고 침략의 본거지 히젠나고야성을 완전히 부숴버렸다는 얘기에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빨리,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냥 잊어버리자고? 때린 놈이야 그러고 싶었겠지...
먹먹한 우리의 걸음 앞에 도자기가 나타났다.
“400년에 걸쳐 산이 도자기가 되었다” 충청도 공주 사람 이삼평이 발견하여 도자기용 흙으로 다 파먹었다는 “넓고 움푹한 산 자리”에는 이렇게 실감나는 글이 적혀있었다.
도공 이삼평. 그가 그냥 공주에 있었다면 그의 도자기는 과연 어떠했을까? 전쟁 후 조선에는 쓸만한 도공이 씨가 말라서 조선도자가 일본에서처럼 꽃피우지 못한 것일까?
백제도공의 뛰어난 기술이 일본이라는 개방된 무대와 당시 유럽으로 진출해나가는 시대적 배경을 만나 비로소 세계수준의 도자문화로 꽃피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받쳐주는 무대, 배경, 마켓팅 역량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척박한 환경에서는 사업적으로 번창하기가 힘들지 않았겠는가! 혼란스런 생각이 머리에 끼어든다.
이름 없는 도공들의 무덤에 묵념했다. 그 분들의 곤고했을 인생과 관광지처럼 아름다운 이마리 도예촌의 풍광이 겹쳐지면서 머릿속은 더욱 싸하게 경각되었다.
상점에 들러 알맞은 크기가 맘에 드는 청화백자 풍 찻잔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그냥 티백차를 마시더라도 여기다 마시면 뜻있는 기념이 될 것이다. 복잡하고 심란한 지금의 심정이 떠오르곤 하겠지.
궁금했다. 저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하기에 조선에 명까지 집어삼키려 했을까. 우리는 얼마나 등신 같았기에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평양까지 유린당했던 것인가?
아주 냉정하게, 조금은 냉소적으로, 있었던 그대로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느끼고 싶었다. 더욱 철저히 부끄러워하고 더욱 뜨겁게 화가 치밀어 올라야하지 않겠는가?
아주 특별했던 이번 여행으로 나는 한층 더 씁쓸하고 깊게 우러난 잎차를 음미하게 될 것 같다. 이따금씩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