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감내하는 이순신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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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이순신포럼 2025 우리이웃돕기 자선 트레킹을 다녀와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5-12-08

조회 28

이순신포럼 회원님들께......

안녕하세요?
언제나처럼 자선 행사를 하려고 준비하면 날씨가 행사 당일 날에는 꼭
춥더라구요. 매년 하는 행사이지만 올해도 12/6(토)은 무척 쌀쌀했어요.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씨에 오후에 비도 온다고 하고.... 그래도 저희들은 
사랑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경복궁역 1번 출구 앞에 모였습니다. 

트레킹을 하려면 등산도 좀 해야 해서 그동안 남한산성, 광교산등 임진왜란 유적지를
찾아 다녔는데 오랫만에 벽제관지와 화석정 (임진강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임진강을
바라보며) 까지 둘러보는 조선 제1로인 의주대로를 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에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서 인터체인지도 생기고 사람이
걸어가기에는 조금 힘든 길이 되었습니다. 둘레길도 없어지고 아파트도 들어서고...
귀하신 이순신포럼 회원님들을 모시고 위험한 둘레길을 걸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임진왜란 유적지, 전적지에서 내려 야외강의를  
듣고 역사인문학에 방점을 찍기로 하고 출발 하였습니다. 마침 경복국역 바로 앞에
이순신포럼 회원님이신 경복궁역 파리바게트 사장님이 계셔서 간단한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여 아침을 먹고 출발!!

선조인금께서 돈의문을 나와 서쪽으로 나가셨는데.... 임금이 정문인 남대문으로
못나가시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돈의문은 조선 개국 때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한양의 설계를 맡겼는데, 정도전은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청문 그리고 한양의 정 가운데에 보신각을 세워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살라는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을 한양의 대문에 새겨 넣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총독부에서 서울에 전차길을 개설한다는 명목으로 대문들을
없애기로 하였는데 동대문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성했던 문이라고 
성벽만 허물고 그대로 보전하고, 남대문은 가토 기요마사가 입성한 문이라고
성벽만 허물고 그대로 보전하고 말았는데 돈의문은 비운의 대문으로 그대로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자리 입니다.

돈의문을 거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몽진을 가셨습니다. 말이 몽진이지 피난길
아닙니까? 왜 그 날 따라 비가 그렇게도 오는지 홍제원쯤 오니까 억수같이 
퍼부었다고 선조실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돈의문을 나오면 모화관이 있는데
중국 사신이 오면 모화관에서 영접을 하였다고 하니 지금의 영빈관 역활을 
한 곳인데 일제강점기에 독립협회가 주관이 되어 중국에 대하여 사대의식을 
치루었던 모화관을 없애고 독립관으로 그리고 독립문을 세워 우리의 자긍심을
세웠습니다.

한중 외교의 중심이었던 모화관은 중국사신을 극진히 대접했던 곳으로 임금이나 
왕세자가 나와서 의식을 치렀고, 우리 조선의 사신이 중국으로 갈 때에도 이 곳
모화관에서 동지사, 혹은 연행사 의식을 치르고 바로 그 옆에는 경기감영이 있어
물품 검사를 하고 홍제원쪽으로 넘어갑니다. 역관들, 사신을 따라가는 접반사들
양반들을 모시는 몸종이나 가신들이 따라갑니다.

홍제원에 가면 병전거리가 있는데 중국에 잘 다녀오라고 그리고 잠시나마 헤어져
있어야 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움에 인절미를 만들어서 손에 쥐어주며 전별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홍제동 인절미는 그 때부터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우리도 
의주대로를 가며 그냥 갈 수 없어 인절미를 주문하여 따뜻한 떡을 먹으며 갔답니다.

홍제원은 의주대로의 민간인들의 마지막 역관으로 조선의 임금을 알현하기 전에 옷도 
갈아 입고 유숙하는 마지막 역관이라고 합니다. 경복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임금을 
만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일정의 마무리를 하는 곳이지요.

중국사신이 조선으로 왔던 길,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으로 갔던 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배경이 되었던 의주대로, 김대건 이승훈 등 천주교 교인들이 걸어갔던 길,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피난 갔던 길, 병자호란 때 수많은 백성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던 길을 지금 우리가 걷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홍제천을 건너서 끌려갔던 조선의 부녀자들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집에서는 특히 사대부 집안에서는 청나라에서 몸을 더렵히고 온 여식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여 내쫒았는데 임금이 보다 못하여 모월 모일 모시에 홍제천에 가서 몸을 
씻고 오면 깨끗해 진 것으로 하겠다고 엄명을 놓았으나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아 
조선의 처자들이 자결하고 길거리의 귀신이 되었다는 비극의 홍제천을 건너갑니다.
지금은 복개천이 되어 버스로 그냥 휙 지나왔습니다만..... 

중국을 통해서 세계로 나아갔던 그 당시의 의주대로는 정말 조선 제1의 대로였습니다.
홍제원쪽에는 삼각산과 인왕산 산중턱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홍제천이 있는데
홍제천의 냇가에는 모래가 많아 지금 우리는 "모래내"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선조실록에는 임금이 사천(沙川)에 이르니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하고 적고 있습니다.
어쨌든 홍제천을 지나 무악재를 넘어가야 합니다. 이 고개를 넘으면 한양이 안보인다는 
가파른 고갯길로 지금은 6차선 도로가 뚫려 시원하게 달려갔습니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의 한사람인 청음 김상헌이 무악재를 넘으며 "갈 있거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 하는 시조는 청나라로 끌려 가는 노(老)대신의 씁쓸한 마음을 
대변해 주는 슬픈 이야기 입니다. 이제는 북쪽으로 길을 틀어 본격적으로 의주대로로
갑니다. 바로 옆에 우봉 김씨 선산이 있는데 그곳에 대역관 김지남의 묘가 있습니다.
김지남은 숙종 때 백두산 정계비를 아들 김경문과 함께 청나라 강희제를 대신해서
파견 나온 목극동과 함께 조선의 국경을 정하고 그곳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운 훌륭한
업적을 세운 역관입니다.

10여 년전에 우연히 발견한 의주대로 둘레길에서 만난 역관 김지남은 비록 중인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화약제조법을 알아오기도 했고, 외교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세히 기술한 통문관지도 작성하여 후세에 남겨 놓은 저술도
해 놓은 훌륭한 역관입니다. 집안대대로 역관을 하여 집안에서 93명의 역관이 배출 되었으며
아들들도 5명이나 역관이 되어 나라를 위해서 일한 외교가의 집안이 되었습니다.
김지남의 묘는 북한산 바로 뒤쪽에 그리고 숫돌고개(여석령) 옆에 있는데 명나라의 
이여송이 여석령 전투라고도 하는 벽제관 전투에서 대패한 전쟁터 이기도 합니다.


전날 내린 첫눈은 김지남의 선산을 하얗게 덮어 할아버지 묘가 있는 곳까지 올라갈 
수가 없었고, 그래서 김지남의 공적비가 있는 언덕 아래에서 야외강의로 끝을 맺었습니다.
조선의 국경을 외교로 풀어내어 두만강까지 6진을 포함한 넓은 땅을 비롯하여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으니 참으로 이 나라의 큰 애국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웁니다. 우리의 자긍심을 자신감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배웁니다.

버스를 타고, 길이 미끄러워 조심 조심 벽제관지터에 내렸습니다. 벽제관은 의주대로
에서 한양으로 가는 마지막 공식적인 역관으로 사신들이 공무수행을 하던 곳 입니다.
건물만 600평이 넘는 큰 객사인데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하나씩 무너졌고 6.25사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더우기 조선총독부 2대 
총독 하세가와는 벽제관 앞에 있는 육각정을 통째로 일본으로 반출하였다고 하니
나라가 없으면 문화재까지도 수난을 당하는 슬픈 역사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벽제관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화석정으로 향했습니다. 화석정까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진누깨비가 흩날려서 큰길 따라 가다 보니 4-50분 걸렸습니다. 화석정은 임진강 절벽에
세워진 율곡 이이 선생 집안의 정자인데 지금은 절벽밑으로 도로가 나서 차들만 윙윙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야사에 있는 이야기 입니다만 율곡 선생이 선조 임금에게 10만
양병설을 장계로 올리며 지금의 조선은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2년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하며 구폐책을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느날부터인가 율곡 이이 선생이 화석정에 틈만 나면 기름을 먹이라는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는데 10년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 임금이 피난을 가시며 이 곳을 지나게 
되었을 때는 날이 어두어 캄캄하여 어찌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임진강도 건너지 못하고
있을 때 화석정을 불태워서 불밝히고 임진강을 건넜다는 이야기....

선조실록에는 "선조가 임진강에 다다랐을 때 승정이라는 관사가 있어 그것을 불태우고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 가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화석정은 율곡 이이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후학들을 가르켰다는 정자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또한 바로 곁에 자운서원이
있어 율곡 이이 선생의 가족묘 선영과 선생을 모신 자운서원이 있어 그것까지 보고 가는
것으로 했습니다.

마침 비가 그쳐 화석정 앞에서 기부금 전달식을 했는데 이순신포럼의 수석부이사장님이 
참가 하셔서 기부금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성심사회복지법인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 박스 애기들 겨울 용품, 필수용품 등, 서울시립 창신동쪽방촌
상담소 어르신들의 난방용품 등, 학교밖의 아이들 대안교육기관 사비오학교 청소년들에게
각각 300만원씩 전달 하였습니다.  

이순신포럼 회원님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신 따뜻한 정성어린 성금으로 전달해 드려
더욱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귀한 걸음을 하여 주신 참가자 여러분, 비록 
참가는 못하셨지만 성금을 보내 주신 여러 회원님들, 그리고 마음만은 함께 하셨을 다른 
모든 이순신포럼 회원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점심은 토종닭백숙으로 한방 재료를 듬뿍 넣어 몸보신 차원의 점심이었습니다. ㅎㅎㅎ
눈비를 맞으며 화석정까지 오셔서 멀리 북한 땅을 바라보며 더 갈 수 없는 의주대로를
바라보며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굶으면서 피난 가셨던 그 길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드릴 수 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렸습니다. 

점심 후에 자운서원으로 가서 율곡기념관으로 서원으로 그리고 가족묘를 둘러보았는데
율곡 선생의 묘소 뒤에 또하나의 작은 무덤이 율곡 선생의 부인인 곡산 노씨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선생의묘소를 훼철하려고 하는 것을 부인이 양팔을 벌려 막아서서
왜놈들의 칼에 절단되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왜놈들의 만행을
무엇으로 갚으리... 지금도 역사 왜곡으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과도 하지 않은 
이들의 심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례한 왜적들과는 한 하늘 아래 머리를 두고 살 
수 없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완벽한 승리, 압도적인 승리를 할 대한민국의 국력을
보여줄 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명나라의 참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DVD로 보면서 
오늘의 자선행사 그리고 역사인문학의 강의도 마무리 하였습니다. 모두 무탈하게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여러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양성 전투, 임진강 전투, 해음령 전투 등 알려 드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다음 기회에
또 뵙는 것으로 더 알찬 강의로 만나 뵙기를 희망 하면서 2025년 우리이웃돕기 자선트레킹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글 이부경 올림






 




hdlee58 너무 생생한 내용이라서 직접 참가한듯 합니다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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