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포럼 회원님들께......
안녕하세요?
어느 아름다운 봄 날, 이파리 200차 충무공 이순신 481주년 탄신 기념 다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출발하기 전날 밤에 비가 와서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이른
아침부터 모두 현충사에 모였습니다. 이순신포럼 조문수 이사장님과 함께 모두
25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 표지석이 있는 을지로3가역 근처 명보아트홀 앞에서
이순신 장군의 본 고향은 서울이다. 아산이 아니다. 아산의 백암리는 어머니의
초계변씨 집성촌이고, 장인 보성군수 방진의 고향이다는 것을 설명, 그리고
건천동(지금의 인현동) 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출발했습니다.
현충사까지는 거리가 얼마 안되어 버스 안에서 보충 설명과 아침 도시락으로
이어졌습니다.
2009년 3월 봄꽃이 피어나는 어느날, 바로 이 자리에서 제1차 이파리 버스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순국의 바다, 관음포해전을 시작으로 오늘날 200차를
맞이하게 되어 정말 감개무량 합니다.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동안 눈, 비를 맞으며 전국 방방곡곡 이순신 장군에 가셨던 길을
매월 3번째 금, 토요일을 기준으로 해서 임진왜란 유적지, 격전지, 의병들의
활동지 등 일본 후쿠오카, 구마모토, 나가사끼, 대마도까지 조선침략의 전초기지
를 살펴보며 일본으로도 다니며 서로 공부하고 토론하며 우리의 역사와 인문학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세계와 리더십 등에 대해서 체험하며 답사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이충무공묘소에 들러 헌화 하였습니다. 맨 차음에 이순신포럼 조문수
이사장님께서 헌화 하시고 그 다음에 중소기업융합 서울연합회 임재환 회장님께서
헌화 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이번에는 조선수군의 후예들이 많이 오셔서 제독님들과
대한민국 해군 출신 회원님들이 그다음은 민간인들이..... 이렇게 헌화하고
묵념하고 나니 ..이순신 장군께서 얼마나 좋아하실까....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음력으로 3월 8일 생으로 1545년 을사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출발하였던 장소 명보아트홀이 있는 표지석이 있었던 곳에서 태어나셨고
서울에서 12-3세까지 사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 바로 위의 형 요신과 유성룡과 함께
지금의 한국의 집이 있는 곳 남학당에서 공부하셨고 과거시험 준비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백록 할아버지가 기묘사화에 연루가 되어 벼슬을 못하시면서 어머니의 고향인
충남 아산의 백암리(지금의 현충사 자리)로 내려 가셔서 청소년기의 호연지기를 보내셨습니다.
21살에 상주 방씨에에게 장가 드셔서 32살 무과에 급제해서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으로
갈 때 까지 사셨던 고택도 현충사 안에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은 상주 방씨 부인과 셋째 아들 면에게 백암리를
지키라고 하고 어머님을 여수에 모셨습니다. 여수에 계신 어머님은 이순신 장군이
의금부에 잡혀 올라 갔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아산으로 올라 오시다가 배 위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보고 싶고 약 한첩이라도 내 손으로
끓여 주어야 한다는 일념에 83세의 노구를 이끌고 오시다가 그만 기진 하시어 배위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삽교천 근처가 다 바다였습니다. 해암리 역시 바닷가 포구로 어머님이 타신 배가
해암리로 들어오셨지만 이순신 장군과는 시신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난중일기 1597년
4월 13일 일기에도 나와 있듯이 "가슴이 찢어지는 이 슬픔을 다 적을 수가 없다며.....
땅을 치며 통곡하며 "나라에 충성 하고자 했건만 이미 죄인이 되었고 부모에게 효도 하고자
했건만 이미 돌아가셨고...." 하면서 평생을 충(忠)과 효(孝)를 가슴에 새기며 일편단심으로
살아온 장군은 한꺼번에 무너지는 이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으셨겠죠.
어머님을 만났던 그 해암리 게바위를 둘러봤습니다. 묘소에서는 버스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으므로 지금은 매립이 되어 고속도로도 지나가고 농지가 되어 있었지만
예전의 바닷가를 상상하며 둘러보았습니다. 게바위 근처에는 약간의 조형물도 있었고
간판도 조그맣게 세워져 있어 찾아보기는 쉬웠습니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거든요. 별로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이지만요......
다시 현충사로 돌아와서 이순신 기념관에 둘러 유물들과 이순신의 정신세계를 다시 한 번
설명 듣고 보니 더욱 더 감동의 물결이 몰려 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복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셨구나. 나라를 위해서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해서 너무 많은 애를 쓰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리더가 가는 길이 무엇인지 잘 보여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후 3시부터 탄신 다례식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구 본전을 보고 행사장으로 갔습니다.
어느 높으신 분이 오시는지 경호가 대단했습니다. 혹시 대통령께서 오시나 했는데....
역시나 맞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께서 오셔서 다례식에서 인사말씀을 하시고 다례식은
끝났습니다. 우리도 다례상 앞으로 가서 단체로 묵념으로 인사드리고 고택으로 향했습니다.
정원은 잘 정리 되어 있었고 나무들도 정갈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마침 우리 일행과
대통령의 일행이 마주쳤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고택을 둘러 보시고 나가시는 참이셨나
봅니다. 우리는 일행과 함께 대통령과 악수도 하고 인사도 나누고 하였습니다.
우리 대통령도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위해서 애써 주십사 빌었습니다.
현충사 곳곳에서 행사가 열려 이면(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무덤에도 못가고 활쏘기
연습장도 못 보고 왔습니다만 언제라도 둘러서 나의 멘토이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만나뵙고 올 수 있어 그냥 발길을 돌렸습니다.
서울 올라오면서 버스 안에서 우리는 준비도 없이 임진왜란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일본은 준비를 했을까? 무엇을 어떻게.... 마침 교육적 가치가 있는 일본의 좋은 DVD가
있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떤 준비를 했는지, 언제부터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DVD를 보면서... 역시 준비 했구나 침략자의 근성은 우리가 복기해 볼 필요가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구나 하고 말입니다.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짧지만 의미있고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특히 현충사에는 기업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의 노하우를
여쭈어보려고 오시는가 보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순신... 이제는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그의 리더십과 정신세계를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황기철 전 해군참모 총장님께서 이순신의
전기를 불어판으로 출간 하셨다고 하는데 ... 다른 언어로 영어나 일어로 우리가 출간하여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은 어떨까, 입으로만 성웅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에 시간 내시어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다행이도 날씨가 좋아서 무탈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글 이부경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