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DMP 3기 전라좌수영, 여수/순천을 다녀와서
몇년씩 함께 다니다 보니 이제는 제시간에 모이는것을 비롯하여 준비물 또한 간단하고도
빠짐이 없다. 철저한 준비로 전쟁에 임하는 조선 수군과 진배 없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샌드위치로 아침을 하고 순천으로 떠났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함께 하신 순천이 고향이신 김윤중 회장님과 강서 사회복지관 김춘상
관장도 계셔서 이순신 제독의 리더십을 연구하며의 테마 여행은 점점 자리를 잡아가며
확산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순천문화원 유제연 연구원께서 향토 사학자 진인호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다. 순천의 한정식이 제일이라며 정성식당을 갔는데 정말 맛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유의 한식맛이 이런것인가 할정도로 한상 가득 차려진 밥상을 보며 풍요로운 한국의 식자재를 보며 3-4년전에 갔던 인도의 식당이 떠올랐다. 맛은 고사하고 식자재가 좋지 않은것 같아 손이 가지 않았는데.... 식자재가 풍요로운 한국에 태어남을 감사함으로 느끼면서 점시식사를 마치고 순천의 검단산성으로 떠났다.
검단산성은 정유재란때 조명 연합 유상군의 지휘부가 주둔했던 임진왜란의 전적지로
조, 명, 일 삼국의 수륙군이 얽혀 격전을 펼친뒤 노량해전을 끝으로 막을 내린 임진왜란 7년전쟁의 마지막 전쟁터였다. 지금은 성터만 있고 안내표지판만 있고 석성이라고 하는 축대 그리고 기와등의 유물만 있었다. 성터의 잔디밭에 둥그렇게 둘러 앉아 진인호 선생님의 역사얘기를 들었는데 모두들 진지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나는 옛날에 친구들과 뒷동산에 올라 양지바른곳에서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것 같은 느낌에 한순간 행복해졌다.
왜성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군데군데 성의 일부만 남아있고 명나라에서 따라온 화가가 그린 성의 그림을 보니 크기나 구조면에서 꽤 큰성이었던것임을 알수 있었다. 천수각이 있었던곳까지 가면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바다를, 그앞에 있는 장도를 보면서 왜군을 무찌르기 위하여 목숨도 마다하신 이순신 제독 그리고 조선수군들을 생각하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지혜를 얻는것이야말로 지금의 우리후손들이 해야 할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순천 왜성은 정유재란 당시 육전에서 퇴진한 왜군 선봉장 우키다 히에이에, 도다카도라가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한 전진 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의해 3개월간 쌓은 토.서성이다. 누가 쌓았을까? 결국 우리 조선의 선량한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분탕질을 하면서 잡아간 백성들의 손으로 .... 이런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버스로 2-3분 걸어서도 몇분 안되는곳에 충무사가 있었다.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 정운, 송희립을 제향 하고 있는 이 사당은 일제때에 소실되었다가 8.15광복후에 새로 건립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사당을 지키는 이가 없어 경내가 낙엽으로
지저분하게 되어 있고 문도 모두 잠겨 있고 해서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당을 끼고 있는 담벼락에는 예쁜꽃들이 피어 나를 반기는데 웬지 모르게 쓸쓸한 모습에 임진왜란때에 쓸쓸하게 죽어간 백성들의 넋이련가 하고 한참을 보았다.
순천은 검단산성, 왜성, 충무사 말고도 볼곳이 너무도 많다. 낙안읍성도 봐야하고 유네스코에 등록된 갈대숲도 봐야하는데 선암사, 송광사를 뒤로 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여수로 출발 하였다. 예전과 달리 길이 좋아져서 제시간에 다 둘러보고 가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여수에서는 여수시청에서 나오신 문화해설사가 진남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2년에 열리는 세계박람회 때문에 시내 전체가 분주하고 활기차게 보였으며 여기저기 프래카드가 걸려 있어 제법 축제 분위가 나는것 같았다. 여수는 예전에 비지니스로 한번 왔다간적이 있는데 지금은 많이 변하여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진남관은 우리나라의 최대의 단층 목조 건물이다. 원래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을 삼았던곳으로서 임진왜란후에 선조32년 삼도통제사 이시언이 전라좌수영 건물로 세운 75칸의 거대한 객사 건물이 진남관이다. 우리가 찾은 진남관은 지금 보수중이었다.
임시 보호기둥을 세우고 천장과 난간등을 보수 하고 있었다. 비록 보수중이라서 자세히 둘러볼수는 없었지만 그 웅장함이나 전라좌수영 본영으로서의 위풍당당한 기품은 가히 보는이로 하여금 고개를 절로 숙이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 선조들의 넉넉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정교하고 꼼꼼한 기술이 우리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주는 그런 기분이었다.
진남관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그런데로 설명을 들으니 볼것이 너무도 많고 들을것이 너무도 많았다. 유물전시관까지 보고 고소대로 행했다. 고소대에는 좌수영대첩비와 타루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안내문을 읽어보니 마음이 아팠다. 일제때에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온갖 수난을 당하고 했었는데 다행히도 찾게되어 해남지역 유지들의 정성으로 오늘날의 모습으로나마 보존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일인지 모르겠다.
이순신제독을 그리워하며 눈물로서 비석을 세운 조선 수군들의 정성에 우리도 조금은 정성을 보태야 할것 같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하신 이순신 제독을 다시한번
추모 하면서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첫째날의 마지막 일정인 충민사를 둘러보았다. 이순신을 주신으로 이억기 장군 좌찬성 안흥국을 모시고 있는데 아산의 현충사나 통영의 충렬사보다도 훨씬 앞서 세운, 이순신을 모신 최초의 사당이다. 이곳 사당역시 일제때에 철폐 되었다가 광복후 여수 유림들에 의해 다시 재건되고 보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유적지를 돌아 보면서 느낀점은 제대로 보수가 되고 있지 않는 느낌이고 관람객들을 포함해서 별로 관심없이 겉만 보고
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어쩌면 나혼자만의 기우이리라.
저녁은 여수에서 제일의 맛집인 자산어보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생선회를 중심으로
싱싱하고 신선한 여수의 별미를 맛보면서 다시한번 풍요로운 우리나라의 식문화에 반했다.
갓김치는 처은은 아니지만 이렇게 맛있는줄 몰랐다. 이번 여행에서 김윤중 회장님께서
갓김치를 한박스씩 선물을 해주셔서 다시한번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저녁을먹고 우리는 노래방으로 갔다. 4년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오늘은 모두 기분들이 좋으신가보다. 허긴 이순신 제독도 부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먹고 마시고
하는것을 하루일과의 34%나 할애 하셨다고 어디에선가 읽은적이 있이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울대 DMP3기 동문들! 가수 이상 이십니다. 노래방 기계에서 100점이 나오면 1만원씩 벌금(?)을 냈는데 꽤 거두어 들였읍니다.
저녁에 향일암으로 가면서 야경도 보고 아까 해설사가 설명해 주었던 장군도도 확실히 보고 하룻밤 묵고갈 흙집팬션에 도착했다. 아까 순천에서 김윤중 회장님께서 주신 고로쇠물도 있어서 오늘은 하루종일 물을 마신것 같다. 팬션에 도착해서도 고로쇠물을 마시고.... 저녁에 포도주랑 위스키랑 마실거라고 안주까지 준비를 했지만 일정이 너무도 빡빡한지라 모두 단번에 꿈속으로 꿈나라로.... 이번에는 대학생때 갔던 MT 가는 기분으로
한방에 여럿이 잤다. 이런일 저런일 도란도란 얘기 하면서...
아침에 그렇게 몸이 개운할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황토방에서 잤기 때문인것 같다.
웰빙이 다른것이 아니라 이런것은 아닌지. 맑은공기 마시고 올바른 식자재로 만든 맛있는 음식 먹고 좋은곳에서 잠자고.... 지금의 우리의 아파트 주거문화에 비교나 할수 있을까?
다음날은 아침 일찍 향일암 암자로 올라갔다. 6시30분에 해가 뜬다고 해서 모두 서둘러서
올라갔다. 그러나 구름이 많이 가려 한참후에나 해를 볼수 있었다. 바람도 불고 날씨가 제법 쌀쌀 했지만 그리 싫지만은 안은것이 봄이 왔다는 증거이리라.
해물 된장찌게로 아침을 했는데 이것 또한 별미였다. 서울에 돌아와서 체중을 제었더니 2kg이나 늘었다. 확실한 다이어트 실패요. 칼로리 오버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자.
오동도에서 만나기로한 해설사, 그전에 무술목 전적지를 보고 가자 하여 무술목으로...
이름 그대로 목처럼 생긴 뭍이다. 이충무공의 유적비가 있고 자세히 뵈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 딱 알맞다. 그래도 우리는 꼼꼼하게 다 봤다. 지형지물을 가잘 잘 이용한 해전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 하면서 지형지물을 이용한 다는것은 나를 제일 잘 안다는것 이고 나를 잘 안다는것은 확신 할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것 이므로 반은 이겨놓고 하는 싸움이다. 역시 이겨놓고 싸운다는것이죠. 확인하러 가는것 입니다.
우리는 몽돌이 있는 바닷가에 가장 편한 자세로 명상에 들어 갔다. 이순신 제독의 리더십을 연구 하며 한 테마 여행중에 가장 짧은시간 이지만 자기자신과의 만남 그리고 나의 리더십을 성찰 해보는 시간, 어쩌면 여행을 하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어떤 어려움이라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는 용기 등등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면서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봄바다의 내음도 온 가슴으로 들이쉬면서...
오동도에서의 상냥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용굴도 보고 2012년의 세계 박람회전시관 설명도 듣고 청용열차도 타고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여행이란 항상 새롭게 해주는 분명한 그 무엇이 있다. 이제는 이번 여행은 마자막 둘러볼곳, 이순신 어머니 초계변씨 자당 기거지 이다. 효심이 지극한 이순신 제독의 정성이 한눈에 들어오는것 같은 따스한 어머니품을 다시 보는것 같은 그러나 자당 기거지는 정대수대감의 15대손 며느리가 지키고 사는 집앞뜰이었다. 찾는이도 없지만 찾아가도 너무도 쓸쓸하고 민폐 끼쳐드려 미안하고 유지보수도 제대로 도어 있지 않은 상태등 정말 마음이 미어질것같이 아팠다.
효는 무엇일까? 잘 해드리는 것이면 다했다고 할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효를 했다고 말할수 있을까? 안내문에 쓰여진 난중일기속의 이순신 제독의 글을 읽으며 마음 깊이 새겨본다. 나는 제대로 효를 하고 있는가?
선소도 마찬가지였다. 해설사 말로는 이런곳은 찾는이도 없는데 이부경씨가 안내를 부탁해서 오랫만에 와 보았노라고. 정말 서울대 동문 여러분 대단하시다고. 하면서 의아해 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선소는 거북선을 만든곳으로 정확한 위치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나 기록에 의하면 이곳이지 않겠는가 해서 발굴되고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 되고 있다고 한다.
끝으로 점심을 간장게장으로 하면서 이번 테마 여행에서 여러가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임진왜란은 이긴전쟁이냐? 아니면 실패한 전쟁이냐. 왜군들이 물러가고 난 지금,
지금은 어떤상황인가? 전투는 이겼지만 전쟁은 어떠하였는지? 시스템 개발이나 R&D는 이겼지만 회사의 전체적인 경영은 어떠하였는지? 지금이야말로 성찰해 보아야 할것 아닌가?
서울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각자 배운 리더십에 대하여 한마디씩 하면서 돌아왔다.
임진왜란은 누구의 승리이냐며, 이순신 리더십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며, 역사에서 주는
교훈은 있었느냐며 각자의 소감을 얘기하며 무사히 서울에 도착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