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차 리더쉽버스 참가 후기 : 손 광현
순천/여수로 떠나는 1박2일 이순신 리더쉽 버스를 타고~~
이번 여행은 일정이 매우 타이트하였지만 첫째날 순천만습지도 소화해야 했고 둘째날은
향일암 일출봉 트레킹을 시작으로 오후에는 엑스포 홍보관까지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많은 것을 얻어 왔던 유익한 여행이었다.
첫째날 , 왜 명보극장앞에서 모이는지도 모르고 따라간 여행이었지만 이틀동안 이부경
박사님의 유적지 현장강의와 버스안에서의 비디오 학습, 그리고 여수 진남관에서부터
현지 문화해설사를 통한 소중한 배움 들이 풍성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첫째날과 둘째날의 코스 탐방은 일정표에도 나와 있고 해서 생략하기로 하고 내가
느낀 것 몇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이순신 장군이 오늘날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데에는 그 분의 삶에 극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군이 두번이나 모함을 받고 옥살이까지 하면서
온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도 후에 백의 종군을 할 때도
임금(선조)이나 자신을 모함했던 세력들에 대해서 원망하기 보다는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 자신이 국가와 백성을 위해서 온몸을 내던졌다는 사실이다.
보통사람이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일을 한 것이다. 또 하나는 마지막 노량전투에서
적의 탄환을 맞고 장렬히 전사를 했다는 점이다. 임란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적들이 퇴각하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선봉에 서서
싸울 필요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전투를 독려하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만일 장군이 전사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평소 시기를 하던
선조나 정적들로 인해서 장군의 위대한 승리가 폄하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무시
당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장군은 나라에서 전쟁에 대비한 준비를 거의 하고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전라좌수사
로 부임한 후 판옥선을 보강하고 새로이 전함을 건조하면서 치밀하게 전쟁준비를
하였으며, 거북선과 같은 전대미문의 창조적인 전투함을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한산도 대첩에서 사용했던 학익진 전법과 같은 창의적인 전술을 개발하여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장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창의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장군은 원래 문반가문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글과 시재에 능했다고 한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장군에게 병법과 전술 등에 관해 많은 지식을 쌓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예에 관심이 많아
싸움놀이도 좋아했다고 한다. 결국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기때문에 다른 장수들
과는 차원이 다른 창의성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일 장군이 단순히 무반출신
에 그쳤다면 과연 그와 같은 창조성이 생겼을 것인가 생각해 본다. 또한 글과 시재
에 능했기 때문에 매일 매일 전투를 하는 상황에서도 난중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고 생각을 가다듬지 않았을까.
셋째,장군의 창의성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불멸성과 위대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이것이 장군의 무조건적인 백성사랑에서 온 것이라고 본다. 장군은 백성을
괴롭히는 부하들이 있으면 그냥 두지 않고 곤장을 때려 가면서까지 백성들을
보호하려고 했다. 전라좌수사라는 높은 직위에 오르고도 곧 전쟁에 나아가야 할
군인들보다는 평민과 민초들의 삶에 무한한 동정심과 애정을 보이신 것은 바로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본다.
이러한 절대적인 백성사랑이 있었기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구석 구석
군의 기강을 바로 잡고 끊임없이 훈련을 거듭하였으며,거북선과 같은 전대미문의
창의적인 전함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져서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치밀하게 전쟁준비를 하고 국가에서
군량보급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백성들을 독려하여 스스로 자경하여
전쟁에 대비하는 등 실로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 아닐까.
이상 몇가지 감상을 적어 보았는데 이번 여행에 그치지 않고 기회가 닿는 대로 다른 코스도 참가하여 이순신의 창의성,리더쉽의 본질,탁월성 등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이순신 전도사가 되는 그날까지..
(주)모두모두 대표이사
손 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