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감내하는 이순신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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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꾼 - 한산대첩 그 승리의 리더십 2 -

작성자 이부경

등록일 2009-05-23

조회 21,289

톡 톡 톡 새벽녘에 빗소리가 들렸다. 떠나기전에 일기예보를 보고 또 비옷도 준비 하였으나 진짜로 비가 오니 낙심 천만이다. 일기예보가 안맞아야 할텐데 하고 내심 기도도 했건만... 둘째날은 해돋이를 맞이하며 명상 강의가 있어 바닷가에서 앉을 방석도 준비하여 좋은 영감을 얻는데 일조 할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비가 옵니다.

걷기 명상으로 바꾸었다. 호텔에서 바닷가까지 가는길은 조그마한 오솔길로 2-3분정도의 길인데 바닷가로 나오면 산책로가 바닷가를 따라서 길게 이어 진다. 우리는 비옷을 입고 우산도 쓰고 조용히 빗속을 걸으며 명상에 들어 갔지요.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죄송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회원님중에는 고령의 어르신도 계셨는데 모두 하나같이 이런 빗속을 걸으며 명상을 하기란 처음이라며 굉장히 신선하게 느꼈다고한다. 더 좋아했다. 이렇게 말씀들을 하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아마도 그새 이순신 바이러스가 옮겨져서 매사에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로 바뀌었나보다. 엄청난 학습 효과인가?

한시간정도의 빗속의 명상이 끝나고 우리는 박정욱 해설사를 따라서 서호시장안의 졸복국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박정욱 선생님은 통영시티투어를 운영하시고 통영시청의 문화재 보전위원 이라던가 문화재 관리 위원이라던가 아뭏든 통영시청에서 이순신 유적에 관한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이신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설명은 자기에게 맡기라고 처음부터 말씀하셨다.

서호시장안의 졸복국집은 옛날 재래시장안의 작은 식당으로 통영의 명물인 졸복(아주 쪼그만 복)으로 시원하게 아침을 먹었다. 나중에 모두 졸복국이 제일 맛있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아침 해장술로는 그만 인가보다. 재래시장안의 풍물도 구경 하면서 한산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몇번씩 와 보지만 탈적마다 마음이 설래이는것은 아마도 이순신 장군을 만나러 가는 마음이 앞서서일까? 아뭏든 설레는 마음을 다스리며 제승당에 도착. 그때부터 박정욱 선생의 명품 해설이 이어졌다. 통제영시절의 이순신 장군의 업적하며 한산대첩의 학익진 전법하며 그 나름데로의 이순신 장군을 흠모 하는 관점에서 해설이 이어지는데 끝날줄을 모른다.

수루에 올라가서 모두 책상다리 하고 앉았다. 그의 해설은 계속 이어지고 우리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듣고 있었다. 왜 이리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이 많은지 지금까지 이순신을 어떻게 배웠는지 정말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을 가린다. 마침 비가 개어 하늘이 조금은 맑아졌다. 나는 번개같이 스쳐가는 아이디어에 박정욱 선생의 해설을 가로 막았다. 사실은 우리가 아침에 명상을 제대로 못했는데 이 수루에서 하겠다. 하고 주문을 하고 우리는 모두 명상모드로.... 마침 비가오고 이른 아침 이라서 방문객도 별로 없고 해서 오붓하게 명상을 할수 있었다. 우리도 이순신 장군이 되어 한산섬 달밝은 밤에.....

평생에 잊지못할 장소에서의 명상을 하고 활터며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이며 보슬비를 맞으며 참배를 마치고 다시 배에 올랐다. 오히려 비가 와서 운치가 있었다. 너무 좋았다고 한마디씩 해주셨을때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란....

세병관으로 가서 역사공부도 하고 왜 이 고장 이름이 통영인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예전에 시집갈때 통영 자개장을 해 가지고 갔는데 그것이 이런 연유가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두룡포기사비를 보고 언젠가 북한산에서 만났던 제19대 구인후 장군의 17대손 구교훈씨(한국 물류사협회회장)가 생각이 났다. 사진을 찍고 언젠가 만나면 전해 주어야지 하면서...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그안에 세병관을 중심으로 군영이 있었는데 통제사의 집무실은 물론 이거니와 거처하는 집을 비롯하여 공방도 있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이후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공방에서는 무기를 만들지 않고 금은세공으로 다른 세공품들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명품으로 만들어 진것이 통영 나전칠기, 통영 갓 등 통영의 12공방이 있었다고 한다.

세병관에서도 우리는 건물안으로 들어가서 앉아서 해설을 들을수 있었다. 객사 라서 손님이 오시면 영빈관으로 접대 하는곳이 아니라 임금의 전배를 모시고 초하루, 보름에 망궐례를 지내는 곳으로 통영의 가장 중심지인 세병관을 이렇게 다시 알게 되었다. 사람은 죽을때까지 배운다더니 정말 왜 이렇게도 모르고 있었을까?

향토 문화 역사관도 둘러 보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멍게비빔밥 이었는데 지역의 별미 라고 한다. TV에도 나온 맛집이라서 사람도 많고 복잡했다. 그렇지만 아주 맛있었다. 모두 맛있게 먹고 만족해 하는 눈치였는데 양이 조금 부족한게 흠이라면 흠 인것 같다. 아마도 남자분들은 조금후에는 배가 고프지 않을까하고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이제 비가 줄기차게 온다. 조금 더 거세졌다. 그래도 충렬사는 보고 가야 한다며 충렬사로 향했다. 이충무공의 위폐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제7대 통제사 이운룡이 왕명으로 세웠다고 한다. 참배를 하고 박정욱 선생의 해설을 듣는데 본인의 꿈은 충렬사의 제를 올리는 이사가 되는것 이라고 했다. 감탄 했다. 구체적이고도 하고싶은 일을 과감하게 말할수 있는 사람, 이것 또한 우리가 공부 하려고 하는 리더십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충무공의 충렬묘비며, 이충무공 후손통제사들의 비각을 뒤로하고 이제 더 이상 답사를 하기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시간도 많이 지체 되었다. 여기에서 박정욱 선생과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서울로 떠났다. 너무 피곤 하신것 같아 조금 쉬세요 했는데도 모두 상기된 얼굴로 한시간을 못 기다리신다. 다음 휴게소에서 부터는 각자의 소감과 의견 발표등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성찰의 무대가 버스안에서 서울까지 이어졌다.

당장 일기를 쓰시겠다는 회원님,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게 준비 하시겠다는 회원님,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더 공부 하시겠다는 회원님, 내가 왜 사느냐고, 이제는 이렇게 살겠다고 다짐 하시는 회원님, 이순신, 그리고 임진왜란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계셨다는 회원님, 나중에는 그 열기가 폭발하여 거의 다 도착할 무렵에 노래가 터져 나왔다. 한시간짜리 노래방(?)

우리는 이 열기를 어떻게 주체 할 수 없어 다음주 수요일에 강남에서 뒷풀이를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못내 아쉬움 속에서 서로 먼저 가라고 하며 떠나지 못하시는 회원님들을 바라보며 지금은 배가 고픈시대가 아니다. 정신이 고프고 지식이 고프고 감성이 고프고 사람이 고프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식의 욕구를 채워주고 배우고자 하는 리더십을 재조명 하도록 돕는다면 조금이마나 우리 사장님들께 일조를 하겠구나 하고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끼며 나도 이순신! 뒷부분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나도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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