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포럼 회원 여러분!
오늘이 독도의 날 이라고 합니다. 육지만 내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는 조정 신료들 보다는
바다까지 내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생각이 훨씬 더 깊고 글로벌적이라는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살아계셨다면 이런 독도 문제는 단칼에 일휘소탕 하셨겠죠.
리더십 버스 여러분들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답니다. 특히 남도쪽으로 내려가니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하늘은 드높고 지방의
특색있는 별미는 한층 더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답니다.
이번에는 회원님들이 조금 적었습니다. 그런데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출발은 하게
되었고 죽전에서 성심원 친구들과 합류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섰습니다.
이순신을 배우고 실천하는 모임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리더십 버스는 벌써 4년이나
지속적으로 운영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즈음은 길이 좋아서 진도까지는 휴게소를 두번씩 쉬고가고도 12시전에 도착 한답니다.
지금까지 위인전에서나 읽었던 이순신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새로운 각도에서 파헤쳐 보는
이순신의 내면세계! 그 분의 위대한 리더십을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도에서의 점심, 역시 남도지방의 특산물이 많이 올라왔는데 그 중에서 삼합의 독특한
맛은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였습니다. 몇 번씩 가는 곳이지만 진도의 넉넉한 인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마움 그 자체였습니다.
평소에 자주 다니던 식당 아주머니가 오늘은 꽃게 축제가 있어 예약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여
진도 읍내까지 나갔는데..... 왠 꽃게 축제를 진도에서 할까? 궁금해졌습니다. 문화해설사님께서
여러가지 이유로 설명을 하셨습니다만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서해안에서 해야 하는데...
하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벽파진에서의 명상은 우리를 이 어려운 경제전쟁에서 이기라고 필사즉생의 각오로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온몸으로 기를 받고 왔습니다. 멀리 어란진이 보이고 가깝게는 난중일기에
나오는 간부도 그리고 뒤에는 벽파정(일제 때 부셔버려서 지금은 터만 남아있음).....
벽파진 비위에서의 일장 연설은 세계사에 빛나는 장수의 굳은 결의! 그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멋진 그 모습에 들을 때 마다 마음이 두근 거립니다. 이번 34차에서는 우리나라의
차세대 리더인 17세 소년 정성민군이 큰소리로 낭독 하였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간다는 것 생각처럼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사장님은
사장님데로 중간간부는 중간간부데로 사원은 사원데로 각자 자기 할 일이 있고 나름데로의
리더십이 있어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울돌목의 물살에 휩쓸리고 말것이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운림산방에서 소치 허유 선생의 5대에 이르는 화맥을 보면서 그 예술성은 차치 하더라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그 당당한 뿌리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과연 보배의 섬 진도답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남농 선생, 의제 허백련 선생 더우기 소전 손재형 선생까지 예술가를 키워낸
진도야 말로 보배의 섬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습니다.
이순신 장군만 인연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항몽항쟁을 한 곳으로 배중손 장군의 사당도 있었으며
해남 윤씨의 시조인 윤선도 선생의 공적비도 설씨 할머니와의 애끓는 사랑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다음날 용장산성에 가서 삼벌초의 난으로 배웠던 항몽항쟁기를 들으며 우리의 용감무쌍한
자주독립의 정신은 하루아침에 생겨난것이 아니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인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하니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장래는
밝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이 밝은 미래를 넘겨 주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바르게 알리고
공부하여 제대로 전달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서남단 맨 끝자락의 진도 남도석성, 수군의 진지로서의 역활뿐 아니라 민초들의
어려운 생활도 돌보아 주는 지금의 군청같은 역활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동헌이 있고 사또가
있었던것을 보면 제법 큰 마을을 이루고 살지 않았나 하고 생각 해 봅니다.
세방낙조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이번 리더십 버스 34차는 이환준
교수님(사진작가)과 함께 하였습니다. 사진촬영의 개인 지도도 있었고 구체적인 설명을 통하여
사진에 관심이 있으신 회원님들은 너무도 유익한 시간 이었습니다.
몇 년을 다녀도 일몰을 보기가 어려운곳이 세방낙조인데 오늘만큼은 우리들보고 사진찍으라고
너무도 멋있는 일몰 광경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날따라 사진 찍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모두 탄성을 질렀지요. 밑에는 울돌목처럼
바닷물이 세차게 흐르면서 소리를 내고 있는데 하늘은 태평스럽게도 붉게 물든 산허리를
내 보이며 내일 또 오겠다고 아니면 이제는 이별이야 하고 말하면서....
저녁은 바베큐파티입니다. 구이용 전복으로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전복을 구워 먹는것은
처음 이었습니다. 우리 성심원 친구들도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먹느냐고.... 야외에서
별을 보며 식사를 한다는것 참으로 오랫만이었습니다. 저 별은 누구 별이냐면서...
담소를 나누고 와인을 나누고... 너무도 멋진 가을밤이었습니다.
진도에는 호텔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름데로 팬션도 괜찮았습니다만 방이 커서 한방에
3-4명씩 자는것이 조금 불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은 찜질방처럼 따뜻해서 그 다음날
아침에 모두 개운하다고 하셔서 조금은 안심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출을 보러 감깜할때 일어나서 패션의 뒷산으로 올라갔지요. 저는 벽파진
맞은편에서 해가 떠오르는줄 알았었는데 어란진 쪽 이었습니다. 일출도 장관이었습니다.
하룻밤사이에 일몰과 일출을 한꺼번에 보는 행운을 누리고 왔습니다.
갤러리에 들어가 보세요. 사진 잘 나왔을거예요. 이환준 교수님께 배워서 찍은것이거든요.
좋은 아침을 맞이 합니다. 붉은 해를 맞이 합니다. 제가 햇님께 말했어요. 이순신포럼
리더십 버스가 100차 200차 지속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리더십이 전세계로
널리널리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빌었습니다.
아침부터 바빴습니다. 진도 읍내에서 진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복과 가시리(해초이름)를
넣어서 만든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용장산성으로 울돌목으로..... 우리가 보러 간 시간이 제일
유속이 빠른 시간 입니다. 소리도 정말 큰소리로 울며 흐릅니다.
모두 놀라셨어요. 저렇게 험한 바닷물을 이기고 왜적을 물리쳤다는것이 믿기지 않는다는것
입니다. 때마침 조그마한 고갯배(전기모터로 운행하는 배)가 울돌목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데 못나갑니다. 정말 떠밀려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가는거예요. 정말 놀랐습니다.
적은 왜적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바닷물도 있고 아군의 배신자도 있고 말 안듣는 회피자도 있고
이 모든 악 조건을 안고서라도 나와 함께 나라를 구할자 함게 하자는 것이지요. 화약이며 화살이며
군량이며 모두 다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번에 밀리면 죽는것이리고....
두번 다시 기회는 오지 않는다고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고 ... 현장에 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 절박한 심정 그래서 우리는 느끼고 배웁니다. 무언의 멘토를 알아 듣습니다.
충무사의 전라우수사 영감들의 공적비를 뒤로하고 화원반도를 가로질러 고하도로 갑니다.
명량대첩이 끝난후 조선수군의 통제영을 임시 설치한곳 그러나 그곳에서 군량을 조달하고
판옥선을 건조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중요한 곳 입니다. 묘충각이라고 이순신의 5세손이
공적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영산강 하구에 있는 고하도.... 이런 준비를 끝내고 고금도로
움직이시는 이순신 장군의 철저하게 준비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바로 목포대교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목포대교를 지나 독천의 뻘낙지를 점심으로
했습니다. 낙지초무침에 연포탕으로... 마지막 점심은 좀 릿치하게 구성하였습니다. 모두
나중에 가족과 함께 와야겠다나 어쩐다나.....
이렇게 위기관리의 리더십 명량대첩 답사는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조선의
이름으로 하나다. 라고 하시는 이순신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 합니다.
이번 특별한 답사여행에 함께 해주신 이환준 교수님 그리고 이파리 34차 회원님들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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