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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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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이 끝난후에 일본으로 잡혀간 이삼평은 아리타에서 일본 최초의 도광(陶鑛)을 발견하여 일본의
도자기 산업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지금은 도산신사에 모셔져 있다. 그가 살던 긴코우도라는 지명에서
딴 [가나가에산페에]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맨가운데에 있는 남자분이 이삼펴의 14대손 가나가에 삼페에씨 입니다. 이순신포럼에서 나왔다고
일부러 이삼평의 유적지를 함께 돌며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만나니 눈물이 났습니다. 이국땅에서
설움에 북받친 삶을 14대나 이어져 내려왔다고 생각하니 감사하기도 하고 거룩하기도 하고....
이곳은 도조 이삼평이 발견한 이즈미야마 도광 유적지 입니다. 에도시대 초기 도광이 발견된 후부터,
긴 세월동안 재료가 채굴되어 지금은 거의 채굴하지 않고 있습니다. 산의 일부분이 없어진 것으로
보아 당시 도자기 산업의 호황을 알 수 있습니다.
가네가에 삼페이 (이삼평씨의 14대손)씨의 설명을 들으며.....
이삼평씨의 14대손과 함께..... 앗! 이상일 사장님도 한컷 찍으시고 계시네~~~
도산신사에 천황과 이곳의 번주인 나베시마공 그리고 이삼평공이 모셔져 있다는 안내판!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도공들은 천대를 받으며 하층민의 생활을 하였지만 비록 포로로 끌려왔으나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계급을 주고 그들의 작품을 인정하고 무역으로 부를 쌓게 하는 인간적인
대우를 하므로서 도자기 산업의 꽃을 피웠다.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 어쩌면 가장 무서운 전략일 수도
있다.
도산신사 안에 도조 이삼평비가 세워져 있고, 매년 5월4일 한일양국의 관계자들이 참가하여 도조제
(陶祖祭)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삼평공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묵념!
아리타 시내에 있는 이삼평가마 갤러리에서 부인과 함께.... 우리는 13대 작품, 14대 작품 몇점 구입을
했다. 초기 이마리도자기 재현 작품들도 있었다.
사가현읜 도자기 문화관, 규모로 보나 전시내용으로 보나 어마어마한 시설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이천 도자기 박람회와 비교가 될 만큼....
도자기로 만든 시계는 12시가 되니 열리면서 재미있는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무게만도 무려 130Kg이나
된다고 하며 13명의 도공들이 모여서 각자 만든 작품을 이어 맞추었다고 합니다. 대단하죠.
역사적인 현장 앞에서 한컷, 상대방을 인정해 준다는것, 도자기 문화가 일본에서 꽃피웠다는것, 등등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해 주는 장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