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감내하는 이순신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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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차 이순신파워리더십을 연구하는 테마여행 “노량해전 답사후기-황무일 회원님

작성자 황무일

등록일 2013-03-25

조회 23,196


제38차 이순신파워리더십을 연구하는 테마여행 “노량해전”


전적지 [하동/남해/사천]여행을 다녀와서.... [작성자 황 무 일]


충무공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지금도 내 가슴에....


충무공 이순신하면 가슴이 흔들립니다.


온 나라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는데도 당시 사대부들의 자식들은 군에도 가지 않는 세상, 배우지도 못하고 우매한 농민, 어민, 종을 수군으로 양성하여 왜적들과 싸워 승리한 정말 신비스러운 큰일을 해내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존재하고 이렇게 잘살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저의가슴이 흔들리고 감정을 억제하며 3월22일 새벽 서울 일행이 내려오는 전남 광양 매화꽃이 늘어지도록 활짝 핀 청 매실 농원(061-772-4066)으로 일행을 맞이하러 달려갔습니다. 훌륭한 분들과 함께 2일간 이순신 장군의 얼을 찾아 열심히 헤매면서 그분이 남기신 정신과 혼을 흠모하는 기회를 갖은것은 일생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기에 우리의 발자취를 기록해보았습니다.


◈1일차:


2013.3.22 11:30~12:15. 청 매실 마을을 산책하며 만개한 매화의 장관에 도취되기도 했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李滉(이황) 李退溪(이퇴계)선생의 詩碑(시비)가 있어 눈을 크게 뜨고 적었다. 퇴계 이황선생이 매화꽃을 그렇게 좋아 하셨던 것이다.


제목: 倒 垂 梅(도 수 매)


한 송이가 등 돌려도


의심스런 일이거늘


어쩌자 드레드레


거꾸로만 피었는고?


아니 내 어쩌랴?


꽃 아래와 섰나니


고개 들면 송이송이


맘을 보여주는구나!


12:15~13:30. 섬진강 제첩 음식전문식당에서 제첩무침회 와 제첩국 새 맛은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는 것 같았다.


13:30~16:00. 남해와 하동을 잇는 남해대교(일명 노량대교)로 달려갔다 이 순신 장군께서 철수하는 왜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섬멸해야한다”며 전투를 지휘하다 순국하신 바다 “노량대첩”현장을 유람선으로 몇 번이고 돌면서 이 부경 박사의 선상 강의를 들으니 이순신 장군님을 생각하며 헌화 목 념 을 하니 이순신장군을 흠모하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았다.


이어서 남해군 고현면지역“관 음 포”에 있는 이순신장군의 영정 모셔놓은 “충렬사”를 참배했고 충렬사 뒤편에 이순신 장군의 가묘 봉분위에 새 봄 파란 잔디가 유난히 윤기가 나 보였다. 여기 이 순신을 모신 충렬사와 가묘를정성껒조성한분은고박정희대통령으로박대통령께서기념식수하신나무가자라서 성인의 양팔로 한 아름 넘게굵었고 키는30~40여m쯤 되어 보였다. 이어서 야외강의와 앞 바다에 만들어놓은 모형 거북선을 꼼꼼히 살 펴 보았다.


당시 이 거북선에서 왜놈들과 싸우면서 수군들의 식사를 지으셨던 모형밥솥과 당시화장실 수군들의 잠자던 곳, 당시 통신수단의 여러 가지 깃발, 신호 수단 이었던 각 종“鳶(연)” 의 다양함과 색상을 보며 감탄했다. 또한 화포 총통의 설치와 이것을 운용 왜놈을 때려잡은 그 때를 회고 우리 모두는 자긍심도 컷 다 .


16:30~17:00.이순신장군은 전투 중 가슴에 왜놈의 조총탄환을 맞아 운명하신 노량의 바다, 서쪽 으로 기우는 해이지만 앞바다를 너무나 아름답게 비춘다.


장군께서는戰(전)方(방)急(급)愼(신)勿(물)言(언)我(아)死(사)즉“전투상황 이 위태로 우니 내가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란 말씀을 남기시고 순국 하셨다는 기념비는 너무 위대해보였다.


이순신장군이순국하신바다에서 육지로 시신을 옮겨놓았던 자리에 李落祠(이락사)를 참배하였고 또한 이순신장군을 기리며 미래를 개척하자는 교훈의 자리에 “瞻望臺(첨망대)”에올라 살아 있는 이 몸과 두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새기며 충무공 기리는 가슴을 내 머리에 가득 담기도 했다.


이 부경 박사의 야외 강의와 묵념 순간은 오래 도록 잊지 못 할 순간이었다.


이어서 영상관에 들려 성웅 이순신을 기리는 영상물 관람과 해설사의해설을 듣던중에 이순신장군께서 32세에 무과에 합격 하신 후 등용이 안 되고 집에 머물고 있을때주변 사람들이 조정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부탁하여 빨리 등용 되도록 노력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나라에 쓰임일 있으면 목숨을 바쳐 충성을 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밭갈이나 하고 살아도 만족하거늘 권력에 아부해서 뜬구름 같은 영화를 훔치는 것은 나의수치가 되리라” 하며 조정에서 부름을 기다리던 일화를 들으려 원래 큰 인물이 되실 분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17:00~18:00.이조시대 이곳으로 유배 온 사람들의 유몀한 글이 그 외 흔적을 기념하기위해 건립해놓은 남해 유배 문학관에 들려 서포 김만중 ,약천 남구만등 유배된 인물이20여분을 위한 기념관을 관람하였다.


그분들의 유배 생활과 이들이 권력의 횡포로 큰인 물들이 국가를위한 자기의 분야에서 일을못 하고 남해의 고도에서 생을 마치 게 한 당시 사회상에 대한 불편한반성도 해보았다. 이곳에 유배생활을 했던 대표인물인 서포 김만중선생이 남기 글을 모아놓은 “서포집 詩”의 시집을 1만원에 한 권구입했다.


그리고 그분의 시한편을 여기 실어본다.


제 목: 조령에서


백두산이 남쪽으로 삼천리를 달린곳에


큰 봉우리가 가로질러 칠십 성을 갈랐네.


예부터 패권을 도모할 때 할거하는장소였지만


지금은 무너진 보루만 모두 황량하구나.


사람을 맞아 푸른 산 들이 줄줄이 어지는데


눈에는 단풍잎들로 나무마다 밝게 빛나네.


검각에 명문을 새기니 나는 늙 었 구나


말을 멈추고 애오라지 다시 맑아진 하늘을 즐기노라.


19:30~20:30.남해 미조 항 포구에 있는 남해 보물성 회집에서 신선한 도미회 등으로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었다. 이날저녁 싱싱회에 소주맛까지 달콤했다.


21:00~남해바다가 보이는 남해 미조 항“프랑스 리조트”204호실에서 김 동 연 사장과“룸메이트” 가되어 더욱 뜻 깊은 잠자리가 되었고 행복했다.


◈2일차:2013.3.23.06:30~07:30.숙소 뒷 편 산에 올라 남해 해상을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의 전 장터 를 연상하며 나의마음을 다짐도 했다.


나는 일행보다 늦게 올라가 조금 뒤에 내려오면서 숙소로 직행하는 오솔길을 지나 무심코 내려오는 때문에 얼마간 내려오는 중 아~ 문제가 생겼구나 산에 올라 올때는 이런 돌무더기가 없었는데 돌무더기가보이고 올라오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당황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중에 옆으로 숙소쪽 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발견하여 이 길을 따라 다시 올라가면 숙소가 나올것 같아 아침인데도 땀을 뻘뻘 흐리며 부지런히 달려서 아침식사출발 8시전에 숙소에 도착 부지런히 방에 가서 짐을 챙겨 나왔다. 땀은 내의까지 적시었고 얼굴은 벌거케 달아올라있었다.


그러나일행들이기다리지않게시간내가까스로함께출발하여다행이 었다.


08:00~09:00. 8시 정각 숙소를 출발 남해 미조 항 바닷가의 식당 “해사랑 전 복 마을” (055-876-7571)에서 전복죽 별미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잔잔한 남해바다 이런 청정의 바닷물을 일컬어 “청정해“라고 할만치 깨끗하고 파란색이었다.


내 마음과 내영 혼에 까지 이 바다의 氣(기) 와 魂(혼)을 담아갔으면 하는 욕심이 들었다.


09:00~12:00.남해 금산 보리암 에 올랐다. 주차장에서 정상 까지 마을버스 를 이용한 후 나머지는 비포장 흙길을 걷는 맛이 좋았다.


이곳은 태백대간 끝자락으로 기암적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에는 한려수도에 크고 작은 파 란 봉 우리가 동그랗고 길 죽 한 모습으로 바다 복 판에서 남해의 기상과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이 보리 암 문을 열고 들어가 부처님께 3배했다.


그리고 정상에는 옛날 봉화를 놓았던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어 정상에서 일행들은 즐거운 산행을 즐기며 내려가기가 싫었지만 다음코스로 가야했다.


12:30~13:30.점심은 경남남해군 삼동면 기 족 리 282-3에 있는“자 운 정”한정식당에서 멸치, 칼 치 무침 회 와 멸치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와! 멸치 회 를 미나리와 초장으로 무침회를 만든 멸치 회 한 접시가 일행들 상위 놓였다.


누가 먼저들 먹자고 이야기도 하지 않는데도 젓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 맛에 매혹되는 것 같았다. 이어서 소주와 맥주병이 놓였지만 소주가 인기가 엄청 좋았다.


우리가 앉은 테이불 에 앉은 4명모두가 소주를 선호 안주와 소주가 어울러저 소주파티분위기를 연상시켜다. 그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13:30~14:30.가장 아름답다 고 하는 삼천포 대교를 건너 사천시 선진리성답사하며 이순신장군에대한 야외 강의를 청취하며 이순신 장군 흠모하다.


14:30~15:30.사천 선진리 성 주변은 이순신장군께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출전 전투 한 해전지역을 살펴보며 오랜 묵념을 하기도 했다. 인근에는 배다를 매립하여 만든 s p p조선소에서 울리는 강한 철판소리가 간간히 드리고 있어 이 소리는 앞으로 또 한번 왜적이나 전쟁범죄자들이 를 이 땅에서 정쟁을 저지를 때는 용서하지 않고 때려 부 시 는 군함을 만드는 조선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로서 금번 충무공이순신 리더십을 연구하는 테마여행을 종료하였다.


◉ 이순신 장군이 7년간 전쟁 끝에 돌아가신 [노량해전] 현장을 1박2일간 답사 한 것은 정말 뜻 깊은 행사였다.


이 행사에 참여하게 만든 이 부 경 박사 에게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리고 함께했던 일행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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