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 회원 여러분!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날에 맞추어 이번에는 하루코스 토요산행을
마련하였습니다. 적이 되어 조령을 넘어보자, 어떻게 했기에 그 험준한
산을 그냥 넘겨 주었는지, 분하기도 하고 그렇게 간단히 넘을 수 있는 산인지도
확인 하기 위해서 왜적의 고니시 유카나가의 부하가 되어 적으로서 문경세재를
넘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이른아침부터 명보극장앞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에 모두 모였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하는 마음으로 모인 회원님들께 생가터 설명을 하며
중구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상기 시키며 출발 하였습니다.
조령만 넘는것이 아니고, 가면서 괴산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사당도 둘러보고
진주성대첩도 공부하고, 조령을 넘어 탄급대에 이르러서는 신립장군의 탄금대
전투, 즉 실패의 리더십도 배우고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임경업 장군의 사당도
둘러볼 심산으로 하루의 일정을 준비하였답니다.
충무공 하면 우리는 이순신 장군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충무공은 무인으로서의
최고의 훈장이며 시호를 임금으로부터 받는것인데 김시민 장군, 남이 장군,
구인후 장군 등 무려 9명이나 있다고 합니다.
김시민 장군의 사당 충민사까지는 서울에서 약 2시간 남짓 거리의 양지바른
곳으로 깔끔하게 잘 정돈 되어 있는 묘소와 사당 등 아름다운 봄날과 함께
가슴 아리는 풍광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찾는이는 우리들 밖에는 없었고 참배를 할 때에는 너무도 쓸쓸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진주성 대첩때 성을 지키기 위한 장군의 헌신적인 수고와 노력을
우리는 아는지 모르는지..... 순국선열들에 대한 예의가 너무도 희박 하다는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
이번에는 전 해군사관하교 장학근 교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김시민 장군의
묘소 앞에서 역사의 중요성과 올바른 인식에 대하여 심도있는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충민사에서 문경세재까지는 30분 거리의 코스였는데 덕분에 우리는 이른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는 돼지 숫불구이로 맛있는 점심으로 모두 만족했답니다.
이번에는 성심원의 아이들도 참가하여 역사 공부도 하고 등산도 하고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꽤 먼 거리였으나 아이들이 잘 따라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도
있어서 조금은 걱정을 하였거든요.
황토길도 있어서 맨발로 걷기도 하고, 그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의 물소리며
폭포수의 시원한 물소리가 희망의 노래를 들려 주는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최양업
신부님의 기도처도 둘러 보았고, 돌아가신 자리도 보았으며, 그 옛날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굳은 신앙심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제 3관문으로 가는 도중에 빈대떡 막걸리 파는 집이 있어 모두 한 잔 했습니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해서 라면을 시켜 주었는데 어른들이 더 맛있다고 해서.....
그래도 산행에서 조금 먹고 마시는것은 한층 더 재미를 부추겨 주는것 같았습니다.
이제 다왔거니 했으나 제3관문에서 주차장까지는 장난이 아니었어요.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조령을 넘으며 산길을 넘으며 적들이 우리를 조소하며 넘었을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지형지물도 활용 하지 못하고....
육지의 울돌목이라고 생각했으며, 이곳에서 신립 장군이 한 몫 하셨어야 하는건데
하고 생각하니 분한 마음이 앞을 가리어 속이 다 쓰렸습니다. 군대를 모르는 아녀자의
지혜로도 이곳은 군사의 요충지로구나 하고 금방 감이 잡혔다니까요.
이곳을 지키고 나라에 충성한 신충원이라는 군사가 있었는데 천출이라는 이유로 그리
알려져 있지도 않고.... 장학근 교수님의 설명은 제2관문의 누각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난도 치고.... 그러나 물이 너무 차가워...
탄금대로 달려 갑니다. 이제는 신립 장군의 부하가 되어 배수진을 친 탐금대를 뒤로
하고 쳐들어 오는 왜군들을 막아봅니다. 전략이 없이 지형지물도 활용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하다 8,000명이나 되는 군사를 저 푸른 한강물에 집어 넣고 장군도 함께
빠져 죽은 달천강가의 비극! 아, 아~~ 무엇으로 그 값진 피의 댓가를 찾으리요....
조선 제일의 명장인 신립 장군이 왜 그랬을까? 이 일 장군은 또 그랬을까? 수수께끼
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처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반응을 했을까?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 바삐 움직였지요. 임경업 장군의 사당이 하나 더 남아 있었으니까요.
정각 6시에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우리가 도착 한것은 정각 6시....
겉 모습만 보고 다음을 다시 기약 하면서 돌아섰습니다.
산행도 하고 역사 공부도 하고 정말 보람있는 하루였습니다. 이순신 장군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리더십을 집어보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을에는 유성룡, 김성일, 정탁 대감 등의 리더십도 공부 하기로 하고 헤어졌답니다.
겨울의 불우이웃 돕기의 산행에도 많이 참석 하시기를 바라면서 이번 조령/탄금대
산행은 정말 무사히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잘 마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파리 39차에 참가 하신 회원님 그리고 성심원 칮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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