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소통과 침화력을 찾아 떠난다.
“이순신의 소통과 친화력을 찾아 떠난다” 1박2일 일정,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
알에프앤유 이부경 대표가 이끄는‘테마 여행’리더십 함양은 물론 친목도모 효과도 탁월
성혜연 기자 , 2009-06-11 오후 4:34:33
▲ 3호차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 탑승자들
계절이나 축제에 따라 많은 테마 여행 상품이 출시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도 공부하고, 절경도 감상하고, 이순신 장군과 같은 리더십도 함양하는 1석 3조의 테마여행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ECR/SCM 솔루션 공급업체 알에프엔유 이부경 대표가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이순신의 리더십에 감탄하여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직접 장소를 선정하며 만든 프로그램이라 의미가 깊다. 이러한 테마여행의 정확한 이름은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이다. 본지는 지난 6월 5일~6일 1박 2일간 리더십 버스를 탑승, 동행 취재할 수 있었다.
-편집자 주
3호차는 물류 버스
오전 6시 30분, 아직 이른 아침이지만 서울 명보극장 앞에는 하나 둘 사람이 모여든다. 모두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이다. 리더십 버스는 충무공 이순신 생가 터에서 시작된다. 지금의 명보극장 앞에는 이순신 장군의 생가 터를 나타내는 자그마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장군의 출생이 서울이라는 점도 매일 같이 지나는 도심 한 복판에 이 같은 표지석이 있었던 점도 대부분 몰랐던 사실이다.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는 이러한 깨달음의 연속이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거북선의 과학성은 TV에서도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이순신 장군이 낙방을 거듭하며 32살의 늦은 나이로 무과에 합격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해전중 이순신 장군이 탔던 함선이 거북선이 아닌 다른 함선이었다는 사실은?
리더십 버스는 이순신 장군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하여, 너무나도 인간적이었기에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달린다.
“열세에 있는 조선군이 절대 우위에 있는 왜군을 맞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거북선 등 발명에 있었습니다.” 진해로 가는 버스 안, 참가자들의 짤막한 자기소개 후 반딧불 볼펜을 발명한 김동환 선생이 '발명가 이순신'을 재조명 하는 강의가 이어진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잠이 덜 깼을 법도 한데, 모두들 집중해서 듣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여행 상품과는 확실히 다르다.
▲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
장우성 화백에 의해 그려져 현재 아산 현충사에 소장된 그림이다. 세로 193㎝, 가로 113㎝에 달하는 이 대형 영정은 1973년 10월 문화공보부에 의해 표준 영정으로 지정,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진지하게 공부하는 버스 안
11시 30분, 드디어 도착한 진해에는 이른 아침부터 장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야 했던 참가자들을 위해 푸짐한 점심이 준비되어 있었다. ‘진상’이라는 진해 유명 맛집의 별미 대구 해물찜과 해초 비빔밥이 오늘의 메뉴다. 적당히 배를 채우자 여기저기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눈다. 리더쉽 버스의 준비물 리스트에는 특별하게도 ‘명함’이 기재되어 있다.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들이 신청하지만 ‘리더십’을 함양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사장님들이 특히 많다.
3호차는 특별히 물류 분야 유명 인사들이 여럿이다. 이 부경 대표가 우리나라 물류 분야 최대 인적 네트워킹을 자랑하는 GLMP 2기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리더십버스에 타게 된 참가자들끼리 새롭게 사업을 연계하기도 한다. 앞선 1, 2차 버스에선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으니 3호차 버스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앞서 리더십버스가 1석 3조의 효과가 있다고 진술한 것, 정정하겠다.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1석 4조 또는 1석 5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이순신 리더십버스의 특징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자 진해 앞 바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를 방문.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된다. 먼저 해군사관학교 이민웅 교수의 특별강연을 듣는다. 우리나라에서 전문적으로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기관은 해군사관학교와 이순신 리더십센터 두 곳으로 일본의 대륙 침략을 막아낸 세계적인 영웅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 교수의 강연을 듣고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특별강연은 ‘임진왜란 초기 해전과 한산대첩’이라는 주제로 이순신 장군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교수의 짜임새 있는 내용과 간간이 폭소를 자아내는 위트 있는 멘트로 진행된다. “임진왜란이 승리한 전쟁일까요? 패배한 전쟁일까요?” 강연 서두에 이 교수가 던진 질문이다. 당연히 승리한 전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눈치껏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라고 말하자 이 교수는 조선 후기 백성들은 패배한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전쟁터가 된 조선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 통쾌하게 이긴 전쟁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렇듯 이교수의 강연은 이순신 장군에 관한 환상과 거짓을 가능한 배재한 내용들로 진행된다. 명량해전의 경우 자세히 언급되진 않았지만 역사와 신화가 혼재되어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정도의 환상이 덧씌워져 있다. 한산대첩도 왜군과 조선의 세력은 비슷했다. “이순신 제독은 미화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뛰어난 위인이고 매력적이며 무엇보다 인간적인 인물입니다” 교수의 말처럼 명백한 사실만을 받아들여도 이순신 장군은 오늘 날 우리가 이렇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나라를 지켜낸 영웅이자 후세에 길이 남을 지도자였음은 틀림없다. 장군은 불평하지 않았다. 글도 못 읽는 오합지졸의 농민들을 세계 해전의 역사로 남는 훌륭한 병사로 키워냈다. 이러한 장군의 리더십은 난중일기를 통해 얼마간 추측할 수 있다.
난중일기는 업무일지에 가깝다. 장군을 엿볼 수 있는 감상적인 측면은 극히 일부분이며 대부분 그날의 경과를 기록했다. 빈도수를 따져보면 활 쏘는 연습, 어머니께 문안 인사, 회식 순으로 많은데 특히 회식 술자리는 장군으로 하여금 병사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한편, 술을 먹고 행패부리는 병사들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원균의 술주정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재미있게 의역하자면 “원균 쟤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가 된다. 이순신 장군은 정말 인간적인 인물이 아닌가?
강연이 끝나자 플로어 여기저기서 질문이 잇따랐다. “학익진은 정확히 어떤 전술이었나요?”, “이순신 장군이 맞나요, 제독이 맞나요?”, “해전은 미리 약속을 하고 바다로 나가나요?” 답변이 궁금하다면 리더십버스를 탑승하거나 이민웅 교수의 ‘임진왜란 해전사’를 읽어보기를.
이순신 장군의 후예를 찾아서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모두 해군사관학교에서 진행된다. 해군작전사령부, 생도 기숙사, 박물관, 거북선, 잠수함 등을 방문하고 우리나라 해군에 대한 유익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다. 여생도의 입관 비율은 10% 내외이며, 그 어떤 훈련도 여자라고 예외는 없다. 잘생긴 해군생도가 박물관에서 설명해준 ‘수자기’는 우리나라 함선이라면 반드시 펄럭이는 지금의 국기 대신으로 이후 프로그램에서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일반인의 견학이 쉽지 않은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 잠수함 역사관 등을 방문했는데 이는 리더십버스에 탑승해 감동 받은 해군 중령이 있었기에 수월했다는 후문이다.
이순신리더십버스는 단순한 관광 여행이 아니다. 당초 기획의도가 이순신을 공부하고 본받는데 의미를 두고 있으니 다소 빠듯하다고 할 수 있는 일정이다. “머리에 너무 많은 걸 입력하니까 포화상태예요.” 참가자 중 한 명이 벅찬 일정이 힘들다는 얘기를 에둘러 투정할 때쯤 버스는 통영 동남항 야경이 훤히 보이는 횟집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는다.
밑반찬으로 나온 멸치회는 통영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성격이 예민한 멸치는 웬만큼 싱싱하지 않으면 회로 먹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개불, 해삼, 게, 전복 등등 몸에 좋고 값비싼 해산물들이 줄줄이 나온다. 메인메뉴인 회는 배가 불러 접시를 비우기 어려울 정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벌써 소주 한 병을 비웠다.
또한 이종애 문화 해설사가 동행해 음식에 대한 설명과 통영 지역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 게다가 이날 참가자 중에는 결혼 40주년을 맞이한 부부가 있었다. 이부경 대표는 이를 미리 알고 특별히 깜짝 파티를 준비해 당사자는 물론,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6시에 퇴근하는 걸 알고 5시부터 미리 가서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계속 기다리는데 안 넘어 올 수가 있나요. 그래서 결혼했습니다.” 연합해운 신문범 고문이 쑥스러운 듯 결혼 비법을 밝혔다. 다른 이들의 박수소리가 횟집 안을 가득 울렸다. 어디선가 금혼식 때도 초대해달라고 말하자 당연히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 여행지에서 맺는 인연은 정말 특별한 구석이 있다.
거나한 저녁식사가 끝나자 미륵도에 있는 숙소로 이동, 내일 일정은 오늘보다 더 힘들지 모르니 빨리 자는 게 좋다는 이부경 대표의 조언에도 절반은 다시 술자리를 찾아가고 절반은 밤바다를 구경하러 나간다. 마리나 리조트 주변의 바다는 잠잠하고 정적인 모습이 거대한 호수를 보는 것처럼 정화되는 기분이다.
▲ 한산섬 수루에 앉아~
장군의 혼백이 살아 있는 한산도
이튿날 아침은 통영 앞바다를 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 강의로 시작된다. 굳이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해안 산책로가 기가막히게 다듬어져 있으니 그곳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새끼 복어로 시원한 국물을 낸 졸복국으로 아침을 먹고 이번 테마의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한산도로 향한다. 통영에서 3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한산도는 여객선을 타고 이동, 바닷바람을 맞으며 머리카락을 한껏 휘날리니 제대로 여행 온 기분이 든다.
오늘 이순신 리더쉽 버스는 통영의 명사, 길라잡이 박정욱 선생이 길잡이를 맡았다. 박 선생의 감칠맛 나는 말솜씨와 깊은 지식은 이후 이순신 장군은 물론 통영에 대한 애정까지 샘솟게 했다.
한산도는 7년 전쟁 중 이순신 장군이 3년 8개월을 보내며 삼도 수군을 지휘, 무기를 만들고 군량을 비축하던 곳으로 충무사(忠武祠), 제승당(制勝堂), 수루(戍樓), 한산정(閑山亭) 등 이순신 장군을 기릴 수 있는 유적지이다. 제승당으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비뚤배뚤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경치에 감탄하는 것도 좋지만 묵묵히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을 생각해보는 것도 잊지 말 것.
제승당임을 처음 알려주는 '대첩문' 이문의 현판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특이하게도 직인이 따로 없다. 박 대통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사하듯 내리는 직인을 성웅 이순신 장군에게 감히 쓸 수 없다며 고사했다고 한다. 이어 수루에 오르니 한산도 앞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에 나오는 수루가 바로 이 수루다. 이 수루에서 지어졌을 것 같은 한산도가는 사실 한산도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다른 지역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충무사 앞에서는 한산대첩에 대한 열띤 강의가 이어졌다. 한산대첩은 세계사에 남는 승리의 역사다. 그러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음력 7월 하루 꼬박 걸린 이날 전쟁에서 일본수군은 대략 7,000여명이 죽었지만 조선은 19명이 전사했다는 사실만으로 한산대첩이 지닌 의의와 가장 최전방에서 병사를 이끈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다시 통영으로 돌아와서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비운 점심은 멍게비빔밥이었다. 이 식당에는 통영을 대표하는 인물인 박경리, 김춘수, 유치진, 윤일상 등 예술가들의 사진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박 선생은 “통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지역은 없다”며 국제연극제 등이 통영에서 열리는 마땅한 이유를 설명했다. 90년대 시군 통합법에 따라 충무, 통영 후보를 놓고 이름을 정하는 주민 투표를 실시했는데 주민들은 통영을 선택했다. 이러한 이유는 다음 답사지인 세병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해변마을에 불과하던 두룡포는 임진왜란 중 수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충청, 전라, 경상 삼도수군의 수장을 통합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든 ‘통제사’가 주둔하는 군영인 삼도수군통제영이 되어 ‘통제영’ 또는 ‘통영’으로 일컫게 된다. 세병관은 이를 상징하는 건물로 풍수 제일의 자리에 당시 엄청난 규모로 세워졌으며 통영 전체가 세병관에 부속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쉽게도 세병관 하나만 남고 나머지는 일제시대 때 모두 불타 현재 일부를 복원 중에 있다. 쉽게 말하면 통영은 지역적 의미보다 행정적인 의미가 더 큰 곳으로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의 ‘공적인 업적’을 더 강조하고 싶어 통영을 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통영12공방이 유명한 것도 왕실 공방과 같은 제품이 판매됐기 때문이다.
충렬사와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충렬사가 나라에서 세운 사당이라면 착량묘는 통영 지역민들이 세웠다는 차이가 있다. 충렬사에서 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의 위엄이 느껴진다면 착량묘는 난중일기 가운데 싸인 연습을 하던 인간적인 이순신 장군의 인품이 느껴진다. 충렬사는 일제시대, 일본의 침탈을 피하기 위해 지역민들이 돈을 모아 직접 사들여 사수할 수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민간소유인 탓에 관리, 복원이 어렵다.
1박2일간의 짧지만 알찬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 ‘자신의 리더십 재성찰’을 주제로 ‘충무공 이순신 제독 리더십’ 일정을 보고 느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발표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쑥스러운 듯 말을 꺼리던 참가자들이지만 한 번 말문이 트이자 개인에 따라 느끼는 바를 말하느라 정작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일에 싫증을 느끼고 관둘 생각을 하던 차에 버스에 탄 한 간호사의 감상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비슷한 리더십 강화 프로그램을 바로 전날 마쳤는데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별다른 기대를 안 했는데, 방향성을 찾은 것 같아요. 400여년 전의 이순신 장군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저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것 같아 정말 뜻 깊은 시간이 됐습니다.”
"이순신 바이러스를 옮겨주세요"
▲ 알에프앤유 이부경 대표
첫째 날 술자리에서 하나 같이 이 부경 대표를 칭찬했다. 사람을 에스코트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웃으면서 뛰어다닐 수 있냐고. 이순신 장군도 장군이지만 이 대표님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이에 이 대표는 한마디 말로 일축했다.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정말이에요. 이순신 장군을 공부하면서 직원들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 점이 가장 큰 변화에요. 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쟤는 왜 저렇게 회사 생각은 안 하고 자기 이익만 챙길까 얄밉게 보이던 직원들이 이제는 가장 훌륭한 직원들처럼 느껴져요. 이순신 장군은 병사들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그에 비하면 우리 직원들은 좋은 학교 졸업하고 들어온 인재들인데, 제가 제대로된 리더십이 없었던 거죠. 이것 말고도 회사를 경영하는데 있어 정말 좋은 변화들을 직접 겪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 같은 고민을 하는 대표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어요. 모두가 저 같은 변화를 겪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그래서일까. 작고 가녀린 체구의 그녀지만 사람을 통솔하는 모습에서 남성의 강인한 분위기가 함께 느껴진다. 그렇다고 남성적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실제로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친절하면서 섬세한 모습을 보였다. 이부경 대표의 리더십은 강약의 조화가 제대로다. 어떤 칭찬을 해도 이유는 하나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일정이 더욱 좋아지고 있어요. 7월의 리더십 버스는 진해 속천항에서 거제의 실전항까지 배를 타고 가면서 선상에서 강의가 있을 예정이에요. 다음날은 거제 학동 몽돌선착장에서 거제 해금강, 그리고 외도까지 배를 타고 갈 예정이에요. 저는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서 마음이 급한데, 참여하는 분들은 좀 빡빡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걸요.”
돌아오는 버스 안, 각자 마이크를 쥐고 자신의 리더십을 성찰하는 시간에 시간이 모자라 이 대표의 감상은 듣지 못했다.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사연은 3호차 뒤풀이에서 풀어놓기로 했다. 리더십 버스는 이렇게 정기적인 뒤풀이로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갈 예정이다.
2009-06-11 오후 4:34:33 © < 저작권자 © 운송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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