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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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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대첩축제 진해/통영] 44차 이순신파워리더십버스
수루
이 수루는 일종의 망루로서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이 곳에 자주 올라 왜적의 동채를 살피면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우국충정의 시를 읊기도 하던 곳이다. 또 이곳에는 오른쪽의 고동산, 왼쪽의 미륵산, 뒤쪽의 망산을 연결, 봉화, 고동, 연등을 이용하여 남해안의 적 동태를 파악하였다.
이 건물은 1976년 정화사업 때 한산만을 내려다볼 수 있는 현 위치에 고증을 통해 신축한 것이다.
수루에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
한산만
한산만은 통영의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의 내륙 쪽에 있는 만 지형의 바다이다. 한산만의 남쪽은 통영만으로 불리고 있다. 한산만은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은 모양으로 남서쪽에는 두억포가 있고 남동쪽에는 고포가 있다. 한산만의 수심은 입구가 12~14m, 안쪽이 6~9m로 소형선박의 출입이 가능하다. 한산만 남쪽의 통여암ㄴ도 비슷한 지형이지만, 입구의 폭이 1.2km로 더 넓고 수심이 10m 이상으로 대형선박의 출입도 가능하다.
임진왜란 때에는 두억포에 삼도수군의 본영이 설치되었는데 전함인 판옥선과 정탐선인 척후선 100여척과 740명의 조선수군이 주둔했다. 충무공은 이러한 지형을 유리하게 이용하여 한산대첩의 승리를 거두었다. 작은 만과 포구들 크고 작은 섬들이 곳곳에 있는 한산만의 지형에 익숙치 못했던 왜군의 참패는 당연한 것이었다.
수루에 올라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그 옛날 이 곳에 서서 나라를 걱정하셨을 이순신 장군의 그 애틋한 마음을 기리며 잠시나마 명상을 해 보았습니다.
충무사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영정은 종이품 통제사의 관복차림으로 그려져 있다. 매년 봄, 가을에는 통영시민들이 제승당과 함께 제사를 올리며, 한산대첩 기념일인 8월14일(양력)에는 해군작전사령관과 해군사관생도들이 참배하고, 통영시는 한산대첩제를 성대히 거행하여 충무공의 정신을 기리며 이어가고 있다.
사당에는 국보 제76호 서간첩의 일부와 충무공이 송나라 역사를 읽고 썼던 독후감이 병품으로 만들어져 있다. 현재의 영정은 1978년에 사적을 정화할 때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충무사에는 이충무공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영정 초상은 이제껏 보아왔던 온화한 표정의 표준 영정과는 사뭇 달랐고, 위엄이 서려 있으면서도 인자한 모습이었습니다. 1978년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으로, 종이품 통제사 관복 차림으로 그려졌습니다. 이충무공 표준영정은 1952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으로 현충사 본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충무공의 영정은 실물에 기초하여 그린 것이 아니고 유성룡의 <징비록>에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단정하여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으나 안으로는 담기가 있었다"는 기록에 기초하여 그린 것이라 합니다.
나라를 지켜주신 이충무공의 영정 앞에서 감사의 묵념을 드리고 우리는 한산정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한산정
한산정은 충무공이 부하 무사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여기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는 약 145m정도로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곳은 이 곳뿐이다. 충무공이 이 곳에 활터를 만든 것은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요해 해전에 필요한 실전거리의 적응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난중일기에는 이 곳에서 활쏘기 내기를 하고, 진 편에서는 떡과 막걸리를 내어 배부리 먹었음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활쏘기 훈련의 흥미와 무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충무공의 지혜였을 것이다.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무사들은 충무공이 1594년에 건의했던 무과특별시험에서 선발된 하삼도(경상-전라-충청) 출신 사람들이었다.
밝은 미소가 보기 좋은 세 분이십니다~ ^^
한산도를 돌아나오는 길,
그 절경에 감탄하며 이 땅을 지켜주신 우리 옛 선조들의 헌신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에 마음의 힐링을 얻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순신 할아버지 안녕~ 또 올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