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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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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대첩축제 진해/통영] 44차 이순신파워리더십버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한산대첩재현행사가 펼쳐질 망일봉 이순신공원입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에는 '필사증생필생즉사'
곧, '죽고자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하면 죽을 것이다' 라는 충무공의 친필휘호가 세겨져 있습니다.
한산대첩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제1차 출동(옥포해전, 합포해전, 적진포해전)과 2차 출동(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율포해전)에서 7번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 규슈 히젠 나고야성 본영에서 전쟁 지휘를 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수군장수 이순신의 제거와 남해의 제해권 확보없이는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일본 수군장수 구키 요시다카, 가토 요시아키,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연합함대를 구성하여 남해의 제해권 확보 및 전라좌수영을 공략하고 서해 진출을 꾀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김해에서 일본 수군 장수들이 모여 연합함대를 구성하고 있을 때 세력이 제일 큰 함대를 거느린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전공을 탐내어 단독으로 출전하여 전라좌수영을 공략하기 위해 거제 견내량에 도착한다. 일본 수군이 대규모 수군부대를 편성하여 남해 진출을 꾀한다는 정보를 접한 이순신도 부산 방향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당포에 도착한다. 이 때 피란하여 산에 올랐던 당포목자 김천손으로부터 오늘 오후 2시경 왜 적선 70여척이 영등포를 지나 견내량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된다. 이순신은 막하장수들과 논의하여 견내량은 물목이 좁아 전투하기 힘든 곳이므로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을 펼쳐 적을 공략, 한산대첩의 승리를 이룬다.
한산대첩의 의의
한산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 연합함대와 일본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일본 수군 함대와의 전략, 전술을 겨루는 총력전이었다. 조선으로서는 국가의 존망이, 일본에는 전쟁의 승패가 걸린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 해전이었다. 만약 이 해전이 일본의 승리로 돌아가 일본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남해를 돌아 서해로 진출하였다면 일본은 수륙 병진하여 조선을 점령하고 명나라로 진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국권피탈(1910년)의 치욕스러운 역사는 300여 년 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산해전에서 패한 일본 수군은 '앞으로 이순신 함대와는 싸움을 피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엄명을 받게 된다.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7년 전쟁 중 의기양양했던 왜적의 기세를 여지없이 꺾어 놓음으로써 전쟁의 방향을 조선의 승리로 돌려놓은 분수령이 되는 승첩이었다. 왜적들은 이 해전을 통하여 제해권을 장악한 연후에 평양을 점령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카 부대와 합류하여 명나라로 진격하려 했다.
그러나 이 해전에서의 패배로 보급로가 차단되어 평양까지 진출한 고니시 유키나카부대를 포함한 모든 왜적은 애써 점령한 조선의 수도 한양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이충무공의 위대한 승리 한산대첩을 기념코자 1962년부터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에서 해마다 축제를 열어 승첩을 기념하고 있으며, 올해로 축제 52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산대첩재현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나와 자리를 잡고 있네요.
저희도 질 수 없지요?
본부석이 있는 중앙 명당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
통제영 24반 무예 시연입니다.
한산대첩 421주년 기념, 해양경찰 창설 60주년 해양경찰 항공기 축하비행이 있었습니다.
해양경찰 특공대의의 대 테러 시범 훈련도 있었습니다.
드디어 날이 저물고 제52회 통영한산대첩축제의 하이라이트,
한산대첩재현 행사가 성공리에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