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감내하는 이순신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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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차 화천서원, 옥연정사, 겸암정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10-14

조회 16,370

[이순신의 파워인맥 예천/안동] 45차 이순신파워리더십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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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포럼, 화천서원, 옥연정사, 겸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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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대는
'부용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부용'은 연꽃을 뜻하며, 하회마을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하회마을은 물 위에 떠있는 한 송이 연꽃처럼 보여, 마을의 모양을 '연화부수형'이라 합니다. '하회'라는 이름처럼 낙동감이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모습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부용대의 허리 부분에는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의 두 정사를 가르고 연결하는 '층길'이 나 있는데, 이 길로 형제가 왕래하며 우애를 다졌다고 합니다. 류원지는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어 '하회 16경'이라 하였습니다. 부용대에서 만송정 솔숲까지 하회마을의 옛선비들이 선유 줄불놀이를 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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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을 따라나온 요녀석, 너무 순하고 이뻤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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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있을 줄불놀이 행사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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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정사
이 정사는 겸암 류운룡이 명종 22년 1567년에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을 위해 지은 것입니다. '겸암정'이라는 현판을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이 직접 써준 것으로, 겸암이 이를 귀하게 여겨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합니다. 바깥채의 누마루에 앉으면 절벽 아래로 흐르는 깊은 물과 멀리 보이는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 아련히 눈에 들어옵니다. 그윽한 정취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데, 벼슬일을 멀리하고 자연 속에서 학문에만 전념하고자 했던 겸암의 면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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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정사에서의 아침 명상과 모닝커피, 그리고 좋은 분들과의 조용한 담소는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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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너무도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
이런 것이 진정한 힐링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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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숙소입니다. 밤에는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자태를 아침산책에서 돌아와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화천서원
이 곳은 겸암 류운룡 선생(류성룡 선생의 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원 등 향촌 사림의 동의를 얻어 1786년에 건립하였습니다. 화천서원은 강당과 주사를 제외한 건물들이 1996년에 복설한 것으로 강당에서 19세이 이전의 오랜 양식을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건축적인 측변보다는 부용대 우측에 옥연정사와 함께 초점 경관을 이루고 있는 학문적 장소성이 강한 건축유구라는 점에 비중을 두어 기념룰로 지정하였습니다.

옥연정사
서애 휴성룡 선생이 만년에 거주하며 임진왜란의 아픈 상처를 기록한 <징비록>을 저술한 곳입니다. 류성룡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작은 서당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가세가 빈곤하여 걱정하던 중 탄홍 스님이 10년 동안 곡식과 포목을 시주하여 완공하였다고 합니다. 화천이 마을을 시계 방향으로 휘감아 돌다가 반대 방향으로 바꾸는 옥소의 남쪽에 있습니다. 소의 맑고 푸른 물빛을 따서 옥연정사하고 부릅니다. 1576년 짓기 시작하여 1586년 완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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