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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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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파워인맥 예천/안동] 45차 이순신파워리더십버스
향토음식전수자 박재숙 할머니께서 손수 말아주신 건진국수가 아침으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뜨끈하고 구수한 건진국수의 국물맛도 일품이었지만 함께 나온 반찬은 오래전 할머니댁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었습니다.
진정 최고의 밥상이었답니다~ 짱! ^^
의성 김씨 학봉 종택
이 집은 학봉 김성일 선생이 살았던 곳입니다. 학봉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성리학에 깊은 이해가 있었으며 임란의 공신으로 류성룡과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임란이 일어나자 김성일은 경상우병사로 임지에 가던 중 책임을 추궁받아 서울로 압송되다 류성룡의 도움을 풀여났습니다. 그리고 경상도초유사로 임명돼 '일사보국 신지원야(一死報國 臣之願也: 한번 죽어 보국하는 것은 신의 바라는 바입니다)'라며 1593년 4월, 56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의병 모집과 영남사수 임무에 진력했습니다. 그는 "진양(진주)이 없으면 호남이 없고, 호남이 없으면 나라는 이미 어찌할 수 없게 된다. 적이 항상 침 흘리면서 엿보는 바가 이 성에 있다. 나는 맹세코 이 성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사수할 터이다"라며 진주성에서 따우다 최후를 마쳤습니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김성일..." 진주대첩을 총 지휘하다
안경
1577년 학봉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가져온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입니다. 안경알은 옥돌이며, 안경테는 거북등뼈로 만들었습니다. 학봉의 신문물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유서통
사진의 오른쪽 앞쪽에 놓인 길다란 통이 유서통입니다. 1592년(선조25년) 4월11일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된 학봉이 왕의 유서를 넣어 가지고 다니던 통입니다. 양쪽 끝으로 고리가 있어 등에 멜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왕명을 받든 문서가 들어 있어서 누구도 손댈 수가 없는 불가침의 통입니다. "유세떤다"라는 말도 여기서 기인하였다고 합니다.
운장각
조선 중기의 명신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관입니다.'운장'이란 말은 '저 넓디 넓은 은하수, 하늘에서 빛나고 이씨네'라는 시경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돈으로 다 환산할 수 없는 귀한 고문서들이 많이 보관되어있어 마치 은행금고와 같은 철통보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두꺼운 철문 보이시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이파리버스 회원님들을 위해 공개해 주셨답니다~ ^^
종부님께서 손수 귀한 대접을 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정성스럽고 예쁜 다과들이라 입에 넣기가 아까웠답니다. ^^
이번 45차 이파리버스에는 특별한 손님이 계셨습니다.
비지니스차 한국에 오셨던 중국회사 대표님께서 한국의 문화를 알고 싶어 통역사까지 데리고 참석을 해 주셨답니다. 여행 내내 보여주신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깊은 관심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 일찍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