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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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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포럼 자선산행] 48차 오산 독산성 세마대지
보적사
이 사찰은 삼국시대에 독산성을 축성한 후 성내인 현재의 터에 전승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되 이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충건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적사'라는 이름은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춘궁기에 먹을 것이 쌀 한 되 밖에 되지 않던 노부부가, 이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부처의 은혜로 여긴 부부는 그 후로 더욱 열심히 공양하였고 여기에서 '보적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편 '세마'라는 이름은 산성 안에 있는 세마대에서 유래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율이 이 산성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을 막고 있었다. 조선군의 저항이 거세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산성에 쌀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당시 산성에는 물이 매우 귀했으나 권율은 이를 감추기 위해 쌀로 말을 씻는 시늉을 했고,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왜장은 산성에 쌀이 무척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물러났다고 한다. 그 뒤 말을 세워놓고 쌀로 씻은 곳을 세마대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누각이 있는데, 현판은 이승만이 쓴 것이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사적 140호)
독성산성이라고도 하는 이 산성은, 평지에서 돌출하여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과 용인의 석성산성 등과 함께 도성 방어를 위한 삼각체계를 형성하였다. 선조 25년(1592)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이 곳에 있는 세마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선조25년(1592) 12월에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이 근왕병 1만을 모집하여 북상하다가 이 성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왜군 수만명이 이 곳을 지나가다 이 벌거숭이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보내 조롱하였다. 그러자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白馬)를 산 위로 끌고가 흰쌀을 말에 끼얹으며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말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간하였다고 한다. 이때 말을 씻었던 높은 대를 세마대(洗馬臺)라 한다.
난중일기를 완역하신 노승석 교수님의 즉석특강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동환 대장님의 구령에 맞춰 몸에 좋은 기체조도 하였답니다.
박상식 회장님,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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