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감내하는 이순식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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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B 22차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1-06-20

조회 21,623

리더십 버스 회원님께!

염려해 주신 덕분에 YPB 22차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 명량대첩이야말로
필사즉생의 마음가짐으로 다녀온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전날까지
비지니스로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못갈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떠나야 한다. 22차가 더나야 23차도 24차도 출발 할 수있지 않겠는가
하고 마음을 다잡고 링거를 맞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떠났습니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양이틀간 날씨가 너무 좋았고 보석같은 우리 회원님들은 특히 이번에는
꿈나무5명을 초청하여 함께한 뜻있는 답사였기 때문에 더욱 더 분발해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왜 하필이면 이렇게 복잡한 명보극장 앞에서 출발 하냐고
볼멘소리가...... 그러나 설명을 듣고는 감격해 마지 않는 회원님...
역사를 바로 알리는 일에는 역시 지극정성을 쏟아야....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역사에서 배우는 리더십 강의를 하면서 어느덧
진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시 남도지방의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었습니다.
점심을 하고 진도 향토문화회관으로 갔습니다.

지금까지는 벽파진으로 충무사로 명량대첩의 유적지를 먼저 갔으나 이번에는
진도에 왔으니 진도 토요 민속 여행을 관람 하기로 했습니다. 남도의 국악
한마당 정말 좋았습니다. 춘향전의 단막극도 나왔는데 이도령역을 맡은이가
80세의 할아버지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많은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었지요.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것 우리의
숙제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진도 아리랑의 유래도 들으며 함께 합창도 하며
진도의 소리를 새삼스럽게 느껴보는 좋은 경험을 하였답니다.

한국 남화의 본거지 운림산방을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는것은
우리를 문화의 세계로 예술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소치 허련 선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제자로 조선 후기의 화가인데 소치 선생부터 그아들 미산
미산의 아들 남농 선생 그 동생 허림의 아들 허전 등 이렇게 5대에 걸쳐서
각자 자기의 작품세계를 개척한 훌륭한 화가의 집안을 보면서 피는 못
속이는구나 하고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역시 DNA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것을 실감했죠.

지난주에 예산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을 방문하며 운림산방과 연계
하여 좋은 설명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 역사공부가 조금 모자라서
제대로 설명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세방낙조를 보러 가야하는데 해무가 끼기 시작하여 신비의
바닷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첨찰산을 넘어 가는데 그야말로 아리랑 고개
였습니다. 모두 함께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고개마루를 힘들게 올라가는
버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답니다.ㅎㅎㅎ

신비의 바닷길은 처음이지만 바로 그 앞바다가 어란포 이므로 이순신 제독의
전적지 답사로는 제대로 되었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테마가 생겼거든요.
문화해설사는 어란이가 어쩌고 저쩌고 ....또 전설따라 삼천리를 읊어대고....
군소리가 너무 많아서 시끄러웠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에
미워할 수 없는 연민의 정으로 그냥 묻어 넘어갔답니다.

다시 진도 대교를 넘어 울돌목으로, 유스호스텔에서 숙박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내일 아침에 울돌목을 거닐겠다 그리고 그 바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조금은 불편하지만 감내하기로 하였습니다.

22차 회원님들은 정말 부지런하셨어요. 거의가 다 아침 명상에 나왔습니다.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가는 소리를 들으며 울돌목의 가장 깊은곳, 그리고
물실이 센곳 등을 찾아서 쭉 따라 내려갔습니다.

처음 보는일로 그 거센 물결을 들여다 보고 있다가 뜰채로 한 번 휙둘러치니
한꺼번에 숭어가 세마리씩이나 잡혀 올라왔고... 명상이고 뭐고 숭어잡이
아저씨들을 응원하느라고 정신이 팔려서....

그래도 왜적보다 더 무서운 이 험난한 바닷물을 이겨내고 왜적을 물리치신
이순신 제독을 사모하며 한참을 명상속으로.....지금 나의 인생이 순류인가
역류인가, 이 파도에 어떻게 몸을 맡길것인가... 맡겨도 되는것인가 자력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것인가....
명상이 오히려 오만 생각으로 변할때쯤에 순류를 타고 벽파진으로
가는 바지선 한 척의 고동 소리에 그만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아침 8시에 식사하러 출발 합니다. 하고 어제 저녁에 일러주었건만 8시가
넘어서도 우리의 꿈나무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방으로 올라갔더니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메이고.... 일어나 빨리 어르신들
기다리고 계셔.. 빨리빨리....

진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복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해장술도
필요하신지라 울금막걸리로 저말 색갈이 예쁜 노란 막걸리로 아침부터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싫다는 사람이 없으니.... 이구동성으로 아침이 너무
좋았다고..... 저도 기뻤습니다.
회원님들이 이렇게 좋아 하시는것을 보면 내마음은 어느새 눈녹듯이 사르르....

벽파진 대첩비를 쓰신 소전 손재형 선생의 미술관을 둘러보았습니다.
글씨 쓰는것을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 우리나라에서는
서예(書藝), 한류가 그냥 어느날 아침에 된것이 아니고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능에 소질이 있어서 글씨 조차도 예능으로 예술로 보고 있으니 우연은
아니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명량대첩을 뒤로 이순신 제독은 서해대장정을 나서고 후퇴했던 왜적들은 이순신
제독을 도와준 진도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서 그것도 남자들만.... 떼무덤을
만들어 놓았으니 진도 여자들의 한맺힌 그 멍든 가슴을 누가 알아 주겠습니까?

나라가 튼튼하고 강해야 이런일을 안 당하는것인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은
임진왜란때의 백성들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던것이지요. 그래서
진도의 씻김굿이 그 한을 승화시켜 예술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굿을 예술로... 기가 막히죠.

정유재란 순절묘역으로 가서 묵념으로 그날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자며 꿈나무들에게도 당부 하면서....

그 다음에는 항몽 유적지 용장산성에 갔는데 발굴작업 한다고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영상관에서 영상으로 대신 하였답니다. 그래도 항몽유적지탑이
세워져 있어 사진도 찍고 설명도 듣고 위에 용장사가 있었는데 볕이 뜨거워
그냥 지나쳤더니 어느 회원님 왈 왜 절에는 안갑니까?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더 꼼꼼하게 챙겨야겠다고 다짐 하면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하일라이트 [충무공 이순신 제독 전첩비(벽파진)]으로
갔습니다. 거북등에 세워진 커다란 비석은 참으로 웅장하고 비문 또한 훌륭
했습니다. 꿈나무가 읽었습니다. 정말 좋았죠. 회원님중 한분이 이 바위가
이순신 제독이 명연설을 한 그 바위입니까? 그렇다면 내가 연설을 재현해
보겠습니다. 하고 교재 뒤에 있는 명연설문을 거의 웅변에 가깝게 읽었습니다.

모두 조선수군이 되어 만세를 외치며 이순신 당신을 믿고 우리는 죽을 각오가
되어있어요. 한 번 해봅시다. 필사즉생!!

마지막 식사시간 입니다. 전복구이로 장식합니다.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그 많은 전복은 누가 다 먹었을까? 정말 맛있었습니다. 진도의 홍주도 한몫
했습니다. 홍주의 유래도 들으면서 그 빨간색에서 우러나오는 빛깔은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진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정열이라고나 할까....

전라우수영과 울돌목을 다시 한번 돌아 보면서 명량대첩비가 있었던 충무사로
가서 호국영령들에게 잘 계시라는 인사와 함께 묵념으로 참배를 하고 떠났습니다.
충무사 앞에는 역대 전라우수영 수사들의 공적비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완용의 할아버지 공적비도 있다고 합니다만.....

꿈나무들과 함께한 특별한 22차는 이렇게 서울로 돌아갑니다. 이순신을 제대로 알게 되어 기쁘다. 이순신은 무언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평상시의 믿음으로 부하들을 한마음으로 모이게 할 수 있었다. 이런 훌륭한 프로그램인줄 몰랐다.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 먹거리 볼거리 공부할거리 등 너무도 풍부한 체험을
했다. 등등 학습효과 만점 이었습니다.

리더십 버스 회원 여러분 다음 23차에서도 뵙기를 기원 합니다. 리더십 버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많은 성원을 보내 주세요. 그럼 항상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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