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감내하는 이순식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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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버스 25차 정말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1-10-09

조회 21,576

리더십 버스 회원님!

편지가 도착했나요? 가족들은 어떤 반응이셨어요?
우리집은 어머니 왠일이세요. 혹시 무슨일이라도 하면서 집으로 달려 왔어요.
그리고는 밝고 명랑하게 껴안으며 어머니 사랑해요 하고 말했답니다.
저도 가슴이 뭉클했어요.

평상시에 시간이 없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식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거든요.
어쨋거나 명량대첩의 사랑의 편지 프로그램은 성공 입니다.
"우리는 내일 명량으로 나간다. 사랑하는 가솔들에게 마지막 남기고 싶은 말을
남겨라. 육지로 보내질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나오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해 보았답니다.

25차 회원님들은 모두 성실하게 편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진도에서 부쳤지요.
미리 우표랑, 편지지 등 준비해 갔거든요. 연애편지 써보고 처음이랍니다.
다른 이유들도 많이 있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너무 웃겨서요......

명보극장앞에서의 출발은 항상 저를 설레이게 합니다. 이곳이 이순신 장군
생가터인줄은 잘 모르고 계시다가 처음으로 환성을 지르시거든요. 이번에는
몇분이나 계실까 하고.....

백의종군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금방 진도에 도착했으며 남도 음식의 맛기행을
알리는 점심식사는 진도읍의 한정식 집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선이라든지 식자재는 회원님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해군 리더십 센터의 제장명 교수님이 우리보다 먼저와서 기다리고 계셨으며
점심식사후에 벽파진으로 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치르전날
필사즉생 필생즉사 일장연설을 하신 그 바위 벽파진전첩비가 있는 그 자리에서
명량대첩의 특강, 야외강의가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웠습니다만 회원님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으며
멀리 보이는 어란포까지 보면서 역사의 현장을 답사 하였지요. 그 옆의
벽파정도 보며 장보고 시대의 벽파진은 무역선도 왔다갔다 하는 큰 항구
였다고 말해 주었어요.

진도대교의 울돌목이 있는 명량대첩축제의 한마당으로 들어 갑니다. 수변
공원의 이순신 동상 앞에서 제장명 교수의 야외강의가 한차례 더 있었습니다.
강의실에서 듣는것 보다는 현장에서 야외에서 들으니 더 실감이 나죠.

진도는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 이기도 하지만 글씨, 그림, 소리가 보물인
보배로운 섬, 운림산방이 있는 섬입니다. 소치 허련 선생이 지으셨다는
운림산방에는 남도화의 가계보가 그려져 있습니다.

소치 허련 선생 그 아들 미산 선생,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남농 선생
허백련 선생 등등 남도화의 대가들이 운림산방의 사랑방에서 탄생 되었다고
하니 정말 유서깊은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운림산방에서의 남도화 감상은 문화해설사의 해설과 함께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어졌습니다. 날씨도 좋고 어느 좋은 가을날 멋진 그림 여행에
모두 넋을 잃었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해가 진다는 세방낙조 가장 아름답다는 세방낙조를
갔습니다. 그러나 멋진 낙조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눈앞에 펼쳐지는
알 수 없는 낙조의 풍광은 우수를 먹음은채 고요히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은 남도 음식의 정수인 한정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소리의 명창들도
불렀습니다. 나름데로 하우스 오페라를 만들었죠. 명량대첩 축제에 가서
불러야 한다나 어쩐다나.... 그래도 진도의 인간문화재인 명창들을 모셔와서는...

흥이 한참 올라가고 있는데 유리문짝이 저희 회원님 머리위로 꽝 하고 떨어졌어요.
다행히 머리에 약간의 찰과상만 입고 깨진 유리는 떨어져 내리지 않았답니다.
얼마나 놀랐던지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유리가 떨어졌으면 119 부르고 난리를
쳤을텐데 말입니다.

더 놀란것은 당사자인 이광수 법무사님은 의연하게 대처하시고 명창가락에
추임새도 넣으시고 춘향가를 부를때 앞으로 나가 이도령의 역활을 하면서 빙빙
도시고..... 다른 회원님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보여주셨어요.

이순신 리더십을 공부한 학습효과 만점 인가요. 아니면 이법무사님의 천성
이신가요. 아뭏든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명량대첩이 끝난후에 난중일기에 이것은 정말 천행이었다고 적으셨다는데
정말 천행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많은 분들이 울돌목의 물길과 그 소리를 들으러 나왔습니다.
울돌목의 바닥가를 천천히 걸으면서 그 날의 함성을 그 날의 승리를 함께
하면서 이름없는 조선수군들의 용기를 높이 기렸습니다.

물살은 진도대교 바로 밑이 제일 힘찼습니다. 큰소리를 내며 솟구치며 흘러
갔습니다. 마침 썰물이라 더욱 더 빠른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가장 센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아 명상을 시작 했답니다. 멀리 건너편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였습니다.

아침식사는 진도에서만 맛볼수 있는 진복 가시리 해장국으로 모두 만족해
하였습니다. 정말 맛이 있다고...먹거리 하나에도 이렇게 행복해 하고 감동
한다는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 아니겠습니까?

소전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어제 벽파진전첩비에 새긴 글씨는 소전 손재형
선생께서 쓰셨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선생님이셨다네요.
한국에서는 서예, 중국에서는 서도, 일본에서는 서법 이라고 글씨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 보는 눈이 다르니 동양 삼국은 같으면서도 다른 또 하나의
조화였습니다.

어제는 그림 여행, 오늘은 글씨 여행, 우리는 갑자기 문화인이 되어 예술을
감상하는 멋있는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손재형 선생이 쓰신 [한산도가]는
거북선도 그려져 있는 멋진 작품이 되어 박물관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정유재란 순절묘역에서는 묵념으로 그 당시의 말없는 민초들의 영혼을
달래 드렸습니다. 명량해전때 이순신을 도왔기 때문에 너희들은 죽어야
한다며 진도의 남자들은 모조리 다 죽였다고 합니다.

진도는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항몽항쟁의 역사적인
전쟁터도 있습니다. 용장산성 지금은 발굴 한다고 줄 쳐놓고 못들어가게
해 놓았습니다만 멀리서 그 웅장했던 궁궐터며 성곽들은 그 날의 비운의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용장사로 가는데 그 절 앞의 코스모스! 어찌나 많던지
그리고 어찌나 흐드러지게 많이 피어 있었는지 우리는 절에 가는것도
잊고 사진찍기에 바빴으며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 들었습니다.
어떤 남자 회원님 왈 마음을 빼엇겼다나 어쨌다나.....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 맞나요?

이제 마지막 점심 입니다. 전복구이로 색다른 요리법을 소개 하겠습니다.
전복을 통째로 불에 구어먹는것 입니다. 모두 즐거워 하며 리더십 버스는
먹거리에는 배신하지 않는다며 이순신이 남느냐 먹는것이 남느냐는 소리가
또 나왔습니다. 정말 맛있게 많이 먹었습니다.

명량대첩 재현행사 축제의 장으로 갔습니다. 씻김굿이며 진도의 독특한
상여 행렬이며 각종 이벤트로 발딛을 틈이 없었습니다. 각자 보기 좋은
곳으로 흩어졌다가 집합해 보니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도 충무사는 보고 가야겠다는 욕심에 버스를 돌려서 명량대첩비가
잇었던 충무사로 갔습니다. 전라우수사 영감들의 공적비가 4-50기 정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이완용의 할아버지도 있었다네요.

참 역사는 아이러니컬 하죠. 이순신은 나라를 구하고 이완용은 나라를
버리고..... 이완용 할아버지 전라우수사 공적비는 훼손을 염려하여
가르쳐 주지 않는답니다.

너무 힘들었죠. 1박2일 한시도 한눈팔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유익했다고 행복했다고 감사했다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것을
보면 저도 마음이 뿌듯한 보람있는 봉사였음을 감사하게 느낀답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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