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버스 27차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리더십 버스 회원 여러분께!
향일암이 불타고 그 후 속상해서 한 2년 가지 않았습니다. 문화재를 대하는
사람들의 정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러나 이순신 제독의 혁신의 리더십을
생각하면 그래도 다시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비가 옵니다. 비온다는 소리 없었는데 어떻게 된거지 하면서
명보극장 앞으로 나갔는데 의외로 회원님들이 모두 일찍 오셨습니다.
이번에도 충무공 이순신 연구소 이인섭 소장님께서 함께 하시는 바람에
이순신 생가터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순천까지 가는 길이므로 그야말로 백의종군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가다가
온양에 들러 조상님들께 인사하고 간다고 갔지만 기다리는것은 어머님의 부고
였습니다.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떠나는 발길을 차마 돌려 세우지 못하고
순천으로 갑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서 내려 갑니다.
순천은 예부터 한정식이 유명한 곳이라서 점심은 순천 한정식으로 준비를
하였는데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말씀들도 없으시고 모두 조용하였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접한다는것 그리고 즐긴다는것
엄라나 고맙고도 고마운 일입니까?
우리나라의 에코 일번지 순천만의 생태공원으로 갔습니다. 생태관에서의
설명도 좋았고 습지의 탐사선 안에서의 해설도 일품이었습니다. 예약을
받지 않는곳이라서 현장에서 표를 살 수 밖에 없엇는데 표는 16장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를 태우지 말것 인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름다운 포기가 있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탐사선을 포기하고
전망대까지만 가서 보고 돌아가야했는데 말입니다. 다른 분들을 위하여 탐사선
탑승을 포기하여 주신 두 분께 다음해에 특별한 혜택을 드리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어느 좋은 가을날 오후는 빛났습니다.
검단산성과 순천 왜성은 여수로 가는 길목에 있어 먼저 검단산성부터 올라갔습니다.
명나라의 유정제독과 권율장군이 주둔하고 있었던곳으로 순천왜성의 고니시유키나가를
거짓으로 협공하는척만 하고 그 후에는 뇌물을 받고 곧바로 철수해 버립니다.
권율 장군이 올린 장계에서도 답답한 심정을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광양만의 묘도
앞바다에서는 이순신 과 진린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이순신 대교는 묘도를 거쳐서 여수시 (여천공단 있는쪽)로 세계에서 4번째로 긴다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검단산성, 순천왜성, 충무사, 이순신 대교, 흥국사, 이런 순서로 답사코스를
만들면 두루두루 다 살피고 지나가는 코스가 될것 같습니다. 통영도 그렇지만 여수도
가는곳마다 이순신 제독과 관계되는 것으로 많았습니다.
저녁은 여수 시내에 있는 어부사시사라는 횟집으로 갔는데 너무도 훌륭한 저녁이었습니다.
이렇게 싱싱한 횟감은 처음이었습니다. 회원님들 모두가 다 만족하였고 즐거운 식사를
한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향일암으로 향했답니다.
오랫만에 돌산대교를 지나 향일암으로 우리가 묵을 황토 흙집팬션은 우리를 기다리며
미리 군불을 때어 방이 따끈따끈한것이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모두 몸이 시원 하다며 오랫만에 푹 잤다고 인사를 해서 나도 덩달아 몸과 마음이
가쁜하였답니다.
그냥 잠을 자게 내버려두지 않는 달님! 황토방 밖으로는 보름달이 뜨고 날씨는 바람도
없이 차분한것이 그만 바다를 바라보며 바캍의 작은 테라스에서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캠프화이어도 불 부치고 캔맥주로 목을 추기며 또 다시 이순신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오랫만에 느끼는 젊은날의 환희! 뭐 그런것 있지 않습니까? 조금은 들뜬 마음에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노래도 부르고....
다음날 아침 해뜨는시각은 6시50분이라기에 우리는 6시 20분쯤에 팬션을 나와서 향일암
으러 올라갔습니다. 지난번에 불탔던 자리에 새로운 대웅전이 들어 서면서 톱질과
대패질 소리가 들리고 황토로 기와를 얹는 작업도 하고 이른 아침부터 일꾼들은 부산을
떱니다. 많은 관광객들틈에 끼어 땀을 흘리며 올라갔으나 해돋이는 보지 못했답니다.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안되는 한폭의 수채화같은 장관을 보며 우리네 삶의 모습
닮았다라고 느끼면서 원효대사가 앉아서 도를 닦았다는 바위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나마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우리에게는 허락하지 않았죠.
우리도 명상이다. 바로 그자리에서 모두 바위에 앉아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나를
사랑하는 시간으로 맑은 아침 기운을 흠뻑 들이 마시고 내려왔습니다. 아침은
해물된장국으로 평소에 안드신다는 회원님들도 맛있게 한그릇 뚝딱! 왠일이세요?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하다 보면 입맛도 도나봅니다. 예정시간보다 30분 일찍
향일암을 떠나서 무술목으로 갔죠. 예전과는 달리 깨끗이 청소도 되어 있고
한눈에 들어오는 가막만과 광양만의 잘록하게 가늘어진 허리부분의 무술목!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지형지물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으셨죠. 이곳에서도
왜군들을 바다인것처럼 유인하여 60여척이나 무찔렀다고 하는 전적지라고 합니다.
제가 좀더 지형을 살펴 보았으면 바로 옆에 방답선소가 있었는데 거의 원형 그대로
보전 되어 있다고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돌산대교를 지나 진남관으로 가니 오늘의 문화해설사 정현자씨가 마중나와 있었습니다.
몇년전에 진남관을 다 구경하고 그 다음날 우리가 어제 저녁먹은 중식당 이름이 진남관
이냐고 어느 원우님께서 말슴 하셔서 한바탕 뒤집어진일이 있었는데....
그 진남관이 아닌 여수 종고산 밑에 있는 남쪽을 진압하는 관청으로 진남관!
통영의 세병관과 비슷한 이미지였어요. 예전에는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네요.
고소대도 둘러보고 자당기거지로 갔는데 마침 정대수 장군의 15대손 할아버지가
계셔서 집안을 (개가 많이 있어 들어가기가 좀 그랬었는데.....) 안쪽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사시던 집터까지....
이순신 장군의 충과 효, 정말 귀감이 되는 지금도 꼭 몸에 익혀야 하는 사람사는
도리라는것을 잘 일깨워 주는 기념물들이 다시 한 번 우리의 부모님 사랑을 되돌아
보게 하는 유적지였습니다.
굴강으로 선소에 갔습니다. 전라좌수영에는 선소가 본영선소, 방답선소,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는 선소 이렇게 세군데에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나대용 군관은
방답선소에서 거북선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거북선을 매어 놓았다는 계선주에서 사진도 찍고 최근에 발굴되어 복원하였다는
세병관 (무기고), 대장간 (무기 만들던곳)도 보고 자리를 떴습니다.
점심은 지금이 여수에서만 잡히는 서대철이라서 서대회를 먹으러 갔습니다. 이순신
공원 옆에 있는 광장미가식당인데 정말 맛있었어요. 서대회를 조금 넣고 밥에 비벼
먹었는데 그리고 시큼한 막걸리까지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여수 엑스포 홍보관으로 옮겨서 홍보 동영성도 보고 설명도 듣고 충민사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충민사에서는 참배도 하고 향도 키고 절도 하고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지금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 다시 한 번 나라를 구해 주십사 마음을 모았습니다.
충민사 옆에는 석천사도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막하에서 의승수군으로 활약하셨던
스님들이 장군의 사후에도 예를 갖추고 제사를 올렸던 곳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한 번 더 자세히 들러봐야 하겠습니다. 석천사 뒷산으로 올라가면 돌아가신 자리
관음포가 보여서 자연히 그곳에 암자를 짓고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주옥같은 느낌들을 공유 하면서 정말 보람있는 여행이었다고
감사의 말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 또한 보람 있었죠.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리고 모든 회원님들이 좋아 하시니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11년도 마지막 리더십 버스 마무리 잘 하고 돌아왔습니다. 내년의 새로운 리더십
버스를 기약하면서 임진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기를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서대회로는 조금 모자란다고요. 그럼 장어탕을 드셔야죠. 장어탕을 먹을때는 누구하나
말씀하시는 분이 한 분도 안계셨어요. 모두 어디 가셨나요. 공기밥이 추가로 들어오고..
아마도 그집은 조금 손해낫을거예요. 정말 점심 맛있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