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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리더십의 핵심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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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영웅이나 위대한 리더, 나아가 ‘신’처럼 생각하는 건 이순신을 제대로 아는 게 아닙니다. 화도 잘 내고, 외로움도 많이 타고, 잘 울었어요. 이순신을 두고 갱년기 남성의 심리 상태와 비슷하다고도 합니다. 이순신이 위인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지독하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위인전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다. 더러는 필요에 의해 신격화될 때도 있고, 그 와중에 실제보다 훨씬 과소평가돼 폄하 당하기도 해왔다. 이순신을 다룬 책은 자주 나오지만 이순신의 전술, 생애에 대해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씨는 이순신에게서 배울 점으로 먼저 ‘삶의 자세’를 꼽았다. “위인전에서 이순신이 ‘뒤늦게 벼슬자리에 올랐다’고만 하잖아요? 어떻게 올랐는지, 그동안은 뭘하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순신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걸 느껴요.”
   
   이번에 출간된 ‘진심진력’(도서출판 길벗)을 통해서 박종평씨는 이순신에게서 세 가지 ‘진’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盡(다할 진), 進(나아갈 진), 眞(참 진)이다. “최선을 다하다란 뜻에서 자주 쓰이는 ‘다할 진(盡)’은 이순신 스스로도 자주 썼던 말입니다. 주변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했다’며 칭찬해 주거나 스스로 ‘나는 할 일을 다했다’고 자평하는 대목이 많아요.”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사실 이순신의 삶 내내 지속된 것이다.
   
   “20~30대 젊은 독자는 ‘이순신의 삶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됩니까’ 물어오는 사람이 많아요. 그때마다 ‘침과(枕戈)’ 얘기를 합니다.” 이순신 생애 전체로 보면 기쁜 일보다는 힘들고 슬픈 일이 더 많았다. 마음 편한 날보다는 전장에서 긴장에 시달리는 일이 더 많았고, 승리만큼이나 부상이나 패배 등의 아픔을 겪는 날도 많았다. “‘진서’라는 책에 보면 진나라 장수 유곤이라는 사람이 이민족에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언제나 창을 베고 잠을 자며 오랑캐를 섬멸할 날을 기다렸다’고 해요. ‘침과’는 여기에서 유래된 말인데 이순신이야말로 침과의 자세를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고된 전투를 끝낸 후에도 이순신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한산도 승첩을 아뢰는 계본’에 보면 ‘군사를 다스리고 군대를 정비하여 창을 베개로 삼아(枕戈) 변을 기다려 다시 통고하는 즉시 수군을 거느리고 달려오라’고 부하에게 알리는 말이 나온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실패를 하잖아요. 그런 실패의 경험도 자신의 자산으로 바꾸고,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꾸준하게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종평씨는 그 원동력을 또 다른 진, ‘나아갈 진(進)’에서 찾았다. “이순신은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의 ‘아직도’에서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자기 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박종평씨는 이순신이 가졌던 ‘자기애’야말로 타인에 대해 너그럽고, 배려하는 리더십, 단호한 판단력, 긍정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핵심이라고 봤다. “요즘 사람들은 어려운 경험도 자산으로 삼으라는 얘기를 많이 듣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존심을 높이는 것입니다.”
   
   박종평씨는 위기 상황에서 이순신이 보여준 ‘진(進)’에 주목했다. 1597년 봄,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했을 때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부산으로 가 왜적을 막을 것을 명령했다. 이순신은 거부했다. 왕명거부죄로 한산도에서 체포돼 백의종군 처벌을 받았다. “28일 동안 감옥에 갔다가 풀려나 가장 처음 적은 글은 ‘맑았다. 옥문을 나왔다’입니다. 포기한다거나 절망하는 모습은 없어요. 단지 ‘죽음 속에서 살길을 찾으면 만에 하나라도 혹시 나라를 건질 방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의지를 다지는 모습만이 있어요.” 박종평씨는 이순신은 위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불신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면서 “믿음이 이순신을 지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믿음은 ‘하늘’에 대한 것이었다. 박종평씨는 “세 번째 ‘진(眞)’은 경천(敬天)사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난중일기를 보면 죽고 사는 것, 이기고 지는 것이 다 하늘의 뜻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하늘의 뜻을 따를 뿐이라고요.” 그러나 이런 자세가 숙명론적이거나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굉장히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입니다.” 이순신의 기록을 보면 ‘울었다’는 내용이 유독 많다. “툭하면 울었다고 해도 됩니다. 어머니가 걱정돼서 울고, 나라의 앞날이 걱정돼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울었던 것이 이순신 개인에게는 도움이 됐을 겁니다.”
   
   박종평씨는 “진정한 ‘힐링’은 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고 통곡하고 토해내면서 아픈 것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순신은 실컷 울면서 천명(天命)에 순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울고 나면 몸과 마음을 다하는 일이 거짓일 리가 없죠.” 박씨는 이순신의 ‘불승통곡(不勝痛哭)’에 비춰 올바른 리더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미루는 자세는 참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참된 자세를 가지려면 자기 정화가 잘 돼야 합니다. 그걸 이순신은 울음으로 실천한 것이고요. 리더라면 자기 자신을 정화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팔로어들이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말 그대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다. 박종평씨는 “이순신을 공부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자세, 리더십, 모든 것을 공부한다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애초에 15년 넘게 정치판에서 일하다 갑작스럽게 이순신 연구가로 탈바꿈한 것도 평소 취미생활이던 헌책을 모으다가 우연히 난중일기를 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렴풋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난중일기를 재번역하고 있다.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이 어떻게 살아갔었는지, 이순신의 시점에서 재번역해 출간하는 것이 꿈입니다.”


 


출처: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97100022&ctcd=C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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