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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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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과 孝를 싣고 달리는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
- 李芙暻 (사)이순신포럼 이사장
요즈음처럼 역사에 관심을 쏟은 적이 있었습니까?
연일 터져 나오는 일본 아베 총리의 망언에 공분하면서 그들의 역사왜곡을 통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다시 한 번 짓밟히는 것을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에게 꼭 해야 된다고
하며 격려해 주시고 성원해 주십니다. 무엇일까요?
저희들은 매월 한 달에 한 번씩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이순신 장국의 리더십을
배우고 실천하는 모임입니다. 나의 리더십을 재조명해 보고 명상으로 체험으로 멘토를 만나는 체험
리더십 버스입니다. 이름하여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 65회째이며 연인원 1,500명이 탑승하셨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만나게 된 동기는 매우 간단합니다. 어떻게 23전 23승을 했을까?
'한번 가보자. 그날 그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의 현장에 가보는 것이다. 그러면 뭔가
해답을 얻을 수 있다'라고 생각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를 10년 전에 띄웠습니다. 맨 처음에는 개인적인 모임의 사장님들,
최고경영자 과정의 원우님들이 탑승하셨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고
그 전투에서 구사했던 전략과 전술을 공부하고 체험하며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체득한
경험들을 지금 나의 경영에 대입하여 이순신 장군을 멘토로 삼았습니다. 조금씩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를 알게 되면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일어났습니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경영하던 회사가 많이 어려웠을 때 자신감을 잃고 좌절하면서 문을 닫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후로 건강도 안 좋아지고 매사에 즐겁지 않은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게 되었고 이순신역을 맡았던 주연배우의
내면연기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으로 가깝게 다가왔던 것이지요. 더욱이 중소기업 CEO로 우리 곁에
아주 가깝게 서있었습니다. 지금의 나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끼며 연민의 정을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했습니다. 발자취를 따라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하나씩 체험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어려서부터 효자였습니다. 원래가 유학을 하는 문반가문의 집안으로서
글을 많이 읽고…. 그러나 역사는 이순신 장군을 무인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백록 할아버지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고생을 하고 집안의 가세가 기울고 이정 아버님도
벼슬을 하시지 않아 기어이 어머니 고향인 충남 아산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장군은 보성 군수 방진의 무남독녀 온양방씨 수진아씨에게 장가를 들고
장인으로부터 무예를 배우게 됩니다. 천하제일의 궁수가 됩니다. 지금도 현충사 고택 앞의 은행나무
앞에는 그 당시의 활쏘기터가 그대로 부전되었습니다.
어머니 초계변씨는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안부를 여쭈러 갔을 때 "어서 가거라, 가서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고 하신 의지가 굳센 분이셨습니다. 장군은 이런 어머니 밑에서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고 또 어머니의 삶의 모습에서 자연적으로 효심을 배우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형제 간에 우애 있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훈련되어야 하고 마음공부도 게으르지 않게 잘 해야 합니다. 대장부는 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는 맹자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무과급제를 해서 저 함경도
도비구보의 군관이 되어 고생할 때에도 큰 뜻을 가슴에 품고 희망에 찬 미래를 설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함경도 육진에 있을 때에도, 한양의 훈련원 봉사 시절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종일관
정의를 위해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였습니다. 난중일기에도 불의를 참지 못하여 '가소롭다',
'통분하였다' 등의 바른 생각과 행동은 지금의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다행 다행이다."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사오니 한 번 해볼 만합니다." 하는 긍정적인 마음은
아마도 어렸을 적에 어머니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매사를 낙관적으로
보는 습관,어떠한 난관에 부딪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인성교육을 통해서만 길러지는 효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 이순신 장군을 배우면서 충(忠)과 효(孝)의 그 깊은 뜻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진정
인격을 갖춘 사장이었더라면 부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며 경쟁사나 협력업체들에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누가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해답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이순신 장군을 배우는, 그분의 위대하신 정신을 배우는 목적입니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고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면 기꺼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하며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힘은 이순신 장군에게서 배우는 충과 효의 정신입니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것 그것은 가정교육밖에 없으며 어머니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의 기회가 아무리 많고 또 여러가지를 배우지만 사람의 됨됨이를 가르키는
도덕이나 예의범절이 빠져 있다면 이것은 반쪽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을 익히기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제대로 된 기술자가 되듯이 인성교육이 되어있지 않은 청소년들이 사회에 나와서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인성교육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 입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바르게 자라날 때 부모님의 기쁨은 물론이거니와 나라의 기둥이 되고 희망인
이러한 청소년들이 많을 때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것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님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리더가 인격적으로 품위가 있을 때
그를 따르는 부하들도 그에 상응하는 예를 갖추고 서로를 존중합니다. 첨단기술이다 과학이다 하면서
머리로만 부하들을 부리려고 하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따뜻하게 감싸안고 그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며 배려하고 존중하면
그들은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자연적으로 따라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그랬습니다.
결국은 이순신 장군을 배우는 과정이 자신의 인격을 함양시키는 계기가 되며 실천이 되는 것이지요.
청소년들에게는 인성교육이자 예절교육입니다. 청소년들이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배우고 따라 하는
과정에서 동기부여가 되고 긍정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가치 있는 인생의 로드맵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어려서부터 잘 길러야 큰 재목이 되듯이 우리가 정성을 쏟고 마음을 다하여 참모습으로 솔선수범하는
것이 바로 청소년들에 대한 인성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담임 선생님과 함께
현충사로 충무공 묘소를 참배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평택2함대를 둘러서 안보교육도 하는
리더십 버스 프로그램에 아이들은 열광합니다.
역사도 배우고 맛있는 것도 먹고 명상도 하고 유적지도 관람하는 이 멋진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에게
충과 효의 진가를 확실하게 알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역사를 바로 인식함으로써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도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는 힘차게
달려갑니다. 대한민국의 건실한 꿈나무들을 위하여….
"어려서 몸과 마음을 단련함에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
사람 됨됨이를 가르키는 인성이 빠져 있다면 반쪽 교육
이순신 장군의 충효를 배우는 과정은 인격의 함양이며 인성교육이다
청소년들이 장군의 발자취를 배우고 따라 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이고도 미래 지향적인
삶의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 "
출처 : 박약회 소식지 제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