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포 앞바다 해안에 위치한 이충무공의 영구가 처음 육지에 안치되었던 곳이다. 공이 순국한지 234년 (순조32) 에 공의 8대손 이항권이 왕명에 의해 단을 모아 제사하고 비와 비각을 세워 이락사라고한다.
사적 제232호. 경남 남해군 고현면(古縣面) 소재. 이순신이 꽃처럼 숨진 곳이라는 뜻. 이락사는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 먼저 육지에 안치된 곳이다. 그 후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를 거쳐 1599년 지금의 충남 아산에 모셔졌고, 관음포는 잊히는 듯 했다. 그로부터 234년이 지난 1832년(순조32년)에 공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이 이곳에 유허비와 사우를 세웠다.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가 유허비 비문을 짓고 형조판서 이익회가 썼다. 이후부터 거성이 떨어진 곳이라 하여 사람들은 유허비가 세워진 곳의 사우를 이락사로 부르고 있다. 해방 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대성운해(大星隕海)」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비를 건립했다.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비
대성운해라는 편액이 붙은 이충무공 비각 안에는 홍문관대제학 홍석주가 비문을 짓고 형조판서, 예문학 제학 이익회가 쓴 유허비가 있습니다. (사적 제 232호)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 한다. 첨망대 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 눈에 보인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순신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