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관리자
201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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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06년에 창건하고, 이듬해 ‘顯忠祠’라 사액(賜額)되었다.
그 뒤 일본의 국권 침탈로 돌볼 수 없게 되어 한때 퇴락했으나, 1932년에 이충무공유적보존회(李忠武公遺蹟保存會)와 동아일보사가 성금을 모아 중건하였다. 광복 후 1967년 국가에서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마쳤다.
경역 면적은 16만 3096평이고, 주요 시설로 본전(本殿)·구본전(舊本殿)·유물관·고택(古宅)·활터·홍살문(紅―門)·정려(旌閭), 이면(李葂)의 묘소 등이 있다. 본전은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지금의 영정은 1953년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것으로,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구본전은 본전을 신축할 때 배전(拜殿)으로 이용하기로 하고 사적비(事蹟碑)와 함께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였다. 고택은 이순신이 자라난 집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왔으며, 몇 차례 중수 또는 개수되었다. 활터는 옛집 옆에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으로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이다. 홍살문은 사당 경내를 표시하는 정문으로 1932년 중건 때의 자리에 있다.
정려에는 이순신과 조카 완(莞), 4대손 홍무(弘茂), 5대손 봉상(鳳祥), 효자 제빈(悌彬) 등 5인의 편액(扁額)을 보존하고 있다. 이면은 이순신의 셋째아들인데 임진왜란 때 21세로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가 왜군을 막기 위해 싸우다 전사하였다.
유물관에 전시된 주요 유물로는 ≪난중일기 亂中日記≫·서간첩(書簡帖)·임진장초(壬辰狀草)(이상 국보 제76호), 장검(長劒)·옥로(玉鷺)·요대(腰帶)·도배(桃盃)(이상 보물 제326호),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 : 都督印·令牌·鬼刀·斬刀·督戰旗·紅小令旗·藍小令旗·曲喇叺)·교지(敎旨)·각종 무기·거북선 모형·유적 사진·해전도(海戰圖)·거북선도[龜船圖]·십경도병풍(十景圖屛風)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유물관에 전시된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경상남도 통영시의 충렬사(忠烈祠)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