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관리자
201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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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는 옛날 영동의 추풍령, 단양의 죽령과 더불어 백두 대간을 넘나드는 3개의 고개 중 으뜸으로 칠 만큼 중요한 교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한양길에 오르던 영남 선비들이 장원 급제의 희망을 안고 넘던 장원급제길이었고, 조선 초기에는 관료들과 양반들만이 넘나들 수 있던 길이여서 지체 낮은 서민들이 꼭 한번 걸어 보고 싶은 동경의 길 이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신립장군이 이곳에서 왜군을 막지 못해 천추의 한을 남긴 길이기도 하며, 근세에 들어서 반봉건 반외쇄에 대한 항쟁이 치열했던 격전의 현장이며, 더불어 천주교 박해로 수많은 신도들이 넘어야 했던 한 많은 길이기도 하였다.
총 길이 10km인 문경새재는 외침에 대비하여 세 개의 관문을 두었다. 그 중 제 2관문인 조곡관이 제일 먼저 세워졌다. 옛날의 하늘재 길을 대신하여 조선 태종 때부터 본격적인 관로로 이용되기 시작하여 훗날엔 양반세력 뿐만 아니라 보부상을 비롯한 서민들 역시 이 길을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지다 보니 도적들이 기승을 부렸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폭 1m내의 소로에 불과하였던 것을 잦은 외침의 영향으로 이 곳을 군사적 교통 요충지로 인식하여 총 길이 10km의 새재 고개내에 선조 27년 제 2관문인 조곡관을 시작으로 세 개의 관문을 두어 관방(關防)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